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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평점 :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뭐랄까. 이따금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때가 있는데... 그래요. 자주, 아니 거의 매일같이 고민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일단 ‘되고싶은 나’와 ‘실제 나’를 구분해내는 일부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떤 슬픔에도, 어떤 유행에도 휩쓸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요히 들려오는 숨소리처럼 살고 싶다고,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별에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는 깊이 사랑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 담지 않아야 한다. 마음에 담지 않으려면 순간과 찰나에 시선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것들을 무심히 지나쳐야 한다.
또다시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기는 글렀다. 제법 된 깨달음이다. 나는 그저 평생 우왕좌왕 헤매고 부딪히다 깨지고 구를 사람이다. 그렇게 생겨먹었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p.37 나한테 올 희망이나 가능성 같은 것들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너무 필요하죠. 어쨌든 살아야 되니까. 계속 살아야 되잖아요.
이만큼 해봤는데 안 되는 건 대충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걸 알아챌 정도로는 단단해졌다고 해도 좋은 걸까?
누군가 내게 사랑이 많다고 했다. 그것도 너무 많다고, 조금 덜 사랑할 필요가 있다고. 지나가는 새를, 단풍을, 어린 잎과 곧 사라질 구름까지도 사랑하기에 자꾸만 울게 된다고, 그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했다.
안다. 그래서 힘들다. 나는 보기보다, 아니, 대놓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쉽게 지치고 자주 아프다. 얻은 것에 즐거워하기보다 오지도 않은 이별이 두려워 지레 겁을 먹고 앓아눕는 사람이다. 모르는 것이 두렵고, 너무 잘 아는 고통이 무서워 매 시간 매 초 달달 떠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쉽게 마음을 주고 또다시 사랑해버린다. 그로 인해 잃을 것을 겁내고... 더보기.
p.26 쉼 없이 운 덕분에 나는 숨죽여 우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바닥을 칠 때 나는 소리가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엮어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
오래 아프고 성마르게 화를 내며 조바심을 치니, 아파본 적 있는 사람의 글이 기꺼울 수밖에. 마냥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떼지어 합창하는 막무가내 행복보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야지, 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갈 밖에.
그런 사람의 글은 뭐랄까. 햇볕에 오래 달궈진 돌같다. 비에 닳고 바람에 깎여 둥그래진 오래된 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지만, 별다를 것 없이 오래오래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순간을 스치고 찰나에 부서지겠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무언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p.86 소진과 저의 게임이 모험이나 퀘스트를 깨나가는 얘기라면, 혜은의 게임은 테트리스인 거야. 차곡차곡 쌓는데 뭔가 틀어졌어. 그럼 이제 판이 망했다고 생각을 하지. 사실 테트리스는 공간이 많아도 끝에 막대기 하나만 들어가면 클리어거든. 삶 또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가장 사적인 기록, 스스로에 대해 써내린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딱히 초대를 받거나 한 건 아니고요. 보릿자루 1 정도로... 괜찮지 않은가. 서로에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알 만큼 알고 들을 만큼 듣는 그런 관계. 외로운 보릿자루들 같은 사이.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고요한 가운데 나를 조금 남겨두고 또다시 내일로 가는 그런 경험이 곧 일기가 아닐까. 존재는 필연적으로 외로우니 그 또한 위안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곱씹는 시간.
또다시 사랑할 것이고 외로워하며 상처입을 것이나... 또다시 이어진다는 것. 그것들은 이 두렵고 불안한 세상에 간신히 남은 내일과도 같다. 내일, 또 내일, 그렇게 작고 작게 이어져가기를 바라는 것.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기에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것.
“모든 것을 ‘그냥’ 하다가 ‘그냥’ 그만두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그냥 하고 있다는 것, 그냥 좋아한다는 것, 그냥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이 참 근사하게 여겨졌다.”
p.213 나는 인간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에 외롭다고 믿는다. 상상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공허해진다. (...) 인간은 꿈을 꿀 수 있는 존재기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외롭다. 빈도와 농도는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