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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고백부터 해야겠다. 연금제도, 잘 모릅니다. 가입 기간이야 제법 되었지요. 내가 직접 부은 것도, 모르는 새에 부어지고 있던 것도 꽤 쌓였을걸요.
요즘 학교에선 이런 거 안 가르치고 대체 뭘 하느냐고 묻는다면, 배웠습니다. 시험도 봤고요. 심지어 한국인의 인생증명, 수능에서도 해당 과목은 만접이었다고요.
그러나? 정말 현실이 된 지금에 와서는? 싸그리 잊어버렸다 이겁니다. 수능시험 종료 벨소리와 함께 휘발된 기억은 넣으라니 넣는갑다. 부으라니 붓는갑다. 하며 뭐랄까, 연금이라기보단 소득세도 아니고 대강 소비세 떼이는 것처럼 아주 없던 돈으로 여기게 되었다고요.
p.13 노후 빈곤율이 높은 것은, 우리가 베짱이처럼 내일을 준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노후 대비 잘하는 사회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국가가 제대로 된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다수는 늙어서 빈곤하기 마련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주입식 교육으로 짤짤 흔들어가며 가르쳐놔도 말짱 도루묵, 매년 보고서가 나오네 실지급액이 오르네 내리네 떠들어봐도 흐리멍텅 맹탕. 그렇다고 해서 냅다 안 준다고 하면 당장 들고 일어날 사람 중 하나란 말입니다. 나도. 별반 다를 것 없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벌어먹고 사는 동안이야 떼이는 돈 같지요. 받을 때가 되면 대체 그동안 뜯어간 돈 다 어디다 날려먹고 요것만 남았는가 싶지요. 그럼 아주 없는 셈 칠까요? 연금이고 뭐고 뭐하러 돈 없는 늙은이들 나라가 먹여살려주나. 알아서 살라고 할까요? 어디 한 번 해보세요. 그럼. 사회 꼴이 요지경이 되나 안 되나.
앞서 말했듯이 당장이야 그저 뺏기는 돈 같지요. 안그래도 쥐꼬리만한 임금, 당장 먹고 사는 것도 팍팍한데 언제 불려 언제 돌려받나? 부자는 부자대로 빈곤층은 빈곤층대로 손해만 보는 것 같지요. 연금은 어쩌다 생겨나서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요. 존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요?
저자는 연금제도 자체가 아닌 한국의 연금 기금, 그러니까 공적 기금의 운용에서 문제를 찾습니다. 연금재정과 실효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요.
문제는 국가가 노후생계의 최저선을 보장하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지금의 세대분포에 이르기까지의 사회 구조와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금 운용 전략에 있습니다.
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만에는 세대간 불공평을 주축으로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크게 의식되지 않지만, 현행 연금제도는 부과식입니다. 현재 노동인구의 재원으로 연금 지급 비용을 충당하는 셈이지요.
p.49 보험료를 모아 기금으로 적립해서 운용하고, 기금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을 적립식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부과식은 연 단위로 그해에 필요한 재원을 보험료로 걷는 방식이다. (...) 적립식이 계속 유지되려면 낸 것과 받는 것 사이의 수지 균형이 필수다.
p.69 낸 것보다 많이 받게 설계되어 있고, 그 정도가 과거에는 더욱 심했던 탓에, 지금 이대로면 2050년대 중반 기금은 고갈되고, 고갈 이후에도 연금 제도가 유지되려면 보험료율이 30% 가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때의 근로 세대는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세대 간에 불공평한 것은 물론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내 돈으로 생판 모르는 노인을 먹여살리느냐, 그들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 하는 격정적인 불만부터 현행방식으로 운용한다면 수혜인구가 노동인구를 압도하는 초고령화 미래에는 대체 무슨 수로 재원을 충당하겠느냐는 우려까지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래서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저자의 의견과는 별개로,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현행 방식의 취약점을 어쩌란 말이냐, 식으로 방관할 게 아니라, 거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불 보듯 뻔히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 있는 사람이 잘 산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사람은 시장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시장은 사람을 먹여살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차적 기능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최저선을 보장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은 시장의 목적이 아닙니다.
p.85 연금 개혁에서는 세대 내 불평등 완화도 중요하다. 노인 중 국민연금 수급자는 절반에 못 미친다. 연금 수급자는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다. 그래서 낸 것보다 많이 받는 혜택은 노인 중에서도 중산층 이상에게 돌아간다.
돈이 돈을 번다고 하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 없이 사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사람답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는 사람이 사는 사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의 운영에 예기치 못한, 혹은 의도한 바와 다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각자도생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다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함께 살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짧게 말하면, 복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속하는 바는 돈이 아닙니다. 시스템입니다. 돈이 있어 잘 사는 사람은 시스템의 일부를 점유하거나 타인의 몫까지 차지할 뿐입니다. 연금개혁의 향방도 마찬가지의 논리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p.123 국민연금의 혜택(초과 이익)은 가입 기간에 비례하는데, 가입 기간은 대체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길어서 국민연금의 혜택은 역진적이다. 보험료 9%, 소득 대체율 40%일 때 국민연금 초과 이익은 2022년 기준으로 가입 기간 1년 당 16만원 정도이다. 20년 가입한 사람은 매년 320만 원, 30년 가입한 사람은 매년 480만 원의 초과 이익을 얻는 셈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줄고, 수명은 늘어나는 사회, 굶어죽을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사회. 우리는 이 난국을 헤쳐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도를 찾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고민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다른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이전과 이후의 성원에게 ‘그냥’은 없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무겁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원래 다 그런 것은 없는 세상에서, 나라님 없는 나라에서, 모두가 비참하지 않게 살아남을 권리를 위해.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다 말하는,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회에서. 어렵지요. 예. 저도요.
p.114 명실공히 국민연금이라면, 국민 대다수가 노후에 수급권을 지녀야 하고, 연금만으로도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름뿐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의 연금이 되게 하는 것, 이게 연금 개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p.139 국민연금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국민연금만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기초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체계 전반을 대상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국민연금의 위치와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