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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 세계적 지성이 들려주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0월
평점 :
*출판사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 사는 일이 절박하다고 느껴질 때, 싸우는 데 급급해 조금의 여유도 없는 삶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당장 코앞의 위기에도 조금의 경각심 없이 손 놓고 있는 것만 같은 이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지금이 그럴 때냐고, 당신은 이 꼬라지를 두고도 밖에 나가 어울리고 술잔을 기울이고 낭만을 말할 짬이 나느냐고, 정신 똑바로 안 차리느냐고 멱살이라도 쥐어잡아 흔들고픈 심정이 되어버린다. 누군들 안 그렇겠느냐만은...
그러나 세상이 망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고 일상의 소중함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산다, 사람은. 고립되지 않은 삶, 은둔하지 않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사회는 파편화된 개인이 조금도 접촉하지 않고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p.49 자유는 배워야 하는 특성이다. 자유는 이 땅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요. 각자가 자신을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느끼면서 삶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영위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데에는 한 세대면 충분하다.
우리는 실내생활에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코비드 팬데믹으로 인한 격리생활을 거치며 일말의 경각심마저 사장된 듯 하다. 우리는 손 하나, 아니, 궁둥이 한 짝도 까딱하지 않은 채로 세계를 누빈다고 착각한다.
마치 서비스와 나만이 존재하는 매끄러운 세계의 전능한 부품처럼, 우리는 점점 더 ‘안’에 고립되어간다. 침대며 소파에 누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기에 혀를 차고 다시금 두문불출할 것을, 귀를 막고 실내복에 파묻혀 안락할 것을 다짐해버린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밖’이 없는 ‘안’은 무의미하다. ‘밖’으로의 가능성과 동인을 전부 잃어버린 ‘안’은 안식처가 아니다. 감금과 다를 바가 없다.
p.117 집에 나 혼자뿐이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면, 성스러운 장소가 감옥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나는 모든 구석에서 나 자신과 부딪힌다. 더 이상 "밖'이 없다면 "안"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안팎이 없는 닫힌 장소가 될 뿐이다.
다시 한 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혼자가 좋은 사람이다. 혼자 놀기? 혼자 밥 먹기? 혼자 운동하기? 심지어 놀러 다니는 것도 혼자 하기? 세상에 너무 좋아, 땡큐!를 외치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놀고 먹고 운동하고 놀러다니는 모든 순간 어딘가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을 향유하고 사용하며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 나 또한 존재한다.
현대 사회에서 ‘혼자’의 의미는 ‘선명하게 인식하는 실제 대상과 접촉하지 않음’에 가깝다. 방 안에, 더 작게는 손 안에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것’이.
여기서 물어야 한다. ‘거의’는 전부인가? 전부에 가까운가? 얼마나?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 만큼?
p.154 엉덩이를 소파에 처박고 음료를 든 채 잔인하고 폭력적인 시리즈 물을 보면서 밑바닥 세계를 접한다. 그렇게 가슴 졸이고 벌벌떨다가 잠잘 시간이 되면 마음을 놓고 편안해진다.우리는 이런 식으로 경직성과 수동성이라는 이중고를 자처한다.
물론 속 편한 소리 한다 싶은 부분이 있다.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위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아버린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두가 모든 순간을 슬퍼하며 살아야 한다면, 언젠가의 채찍질 고행단과 다를 바가 없다.
저자가 말하는 끌어안고,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고 짜릿한 모험과 비일상의 순간을 향해 뛰어드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쉽지 않다. 당장 급한 생활비, 쪽잠과 과로로 점철된 일과, 보장되지 않는 일상과 외면할 수 없는 고통... 그 모든 것을 없는 셈 치자는 것이 아니다.
저자 나름의 위기의식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안락함에서 뛰쳐나가야 한다. 모두가 모체 없는 태아로 남고자 하는 사회는 너무도 끔찍하다.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며 인사를 나누고 마주해야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집 밖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자꾸만 다채롭고 이질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고치 안에서 일평생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창 없는 모나드’가 아니다.
p.240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역경과의 정면 대결이다. 폐쇄 혹은 개방의 독단주의 대신 다공성을, 절제와 용기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추구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창조적 충격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인생의 맛은 언제나 다양한 영역의 충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