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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수많은 문인과 현자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사랑해야 한다고, 세상은 기쁨으로 넘치고 소중한 것들로 가득하다고. 나는 말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쉬이 잊히는 것을 들여다보고 그 안의 반짝임을 발견하는 것은, 바래고 낡아 사라지는 것을 잘 보내주는 일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쉽지 않다. 슬픔의 끝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놓아주는 것은, 그럼으로서 함께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18 슬픔이 긴 날들에도 다시 기쁠 수 있다고 믿는 마음. 지금 여기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조용히 희망하는 마음. 그러니 하루하루 다가오는 삶을 기꺼이 사랑해보자는 마음. 마음이 자라는 방향은 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말들이 가리키는 곳이기도 했다.
한적한 길을 걸을 때, 가만히 눈을 감을 때, 돌 틈을 비집고 자란 풀이며 떠다니는 솜털이나 신나게 내달리는 것들을 볼 때, 문득 생각한다. 어떤 순간은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 버린다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볼 때, 마주 앉은 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일 때, 다시금 생각한다. 언젠가 이 순간을 간절히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완전히 준비된 이별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떠나보낸 이들을 떠올릴 때,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부수는 것 같은 슬픔에 그저 웅크려 울기만 할 때, 나는 생각한다. 아주 느리게, 기억조차 희미해져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슬픔이 있다고.
p.59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존재의 이름을 익히는 것. 그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익히는 일인 것 같다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지나치며 생각한다. 알아야 할 이름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
유난히 마음에 박히는 말들이 있다. 때로는 너무 아파서, 때로는 오래 닳아 매끄러워진 돌처럼 소중해서. 애써, 굳이, 작은, 연약한, 찰나의, 멀고 알 수 없는 것을 부르는 말들. 그것들을 한 데 모으면 결국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오늘도 생각한다.
도래하지 않은 것을 향한 그리움, 너무 일찍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랑이 있다. 계절의 문에서, 하루의 끝에서 팔을 벌려 맞이하고 안녕을 비는 마음이 있다. 돌고 돌아 다 같은 마음이려니,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
p.140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고, 나란히 걷고 싶고, 다시 한번 옆에 앉고 싶고, 전화를 걸고 싶다는 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어도 다가올 시간은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슬퍼할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듣는 일, 그런 시간들이다. 작고 약하고 사소하고 찰나에 사라지는 것을 오래오래 아껴 사랑하는 마음, 그 무거움을 끌어안는 일이 곧 사는 일이다.
사는 일은 평생에 걸쳐 자라는 일이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조금씩, 느리게, 끊임없이 자란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세계도 자란다. 넓어지고, 다채로워진다. 끊임없이 배우고 살피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최선을 다해 듣는 사람, 타인의 세계를 마음에 담는 사람의 글을 읽으며 여전히 생각한다. 사는 일은 자주 슬프고, 어렵지만, 눈물이 흐른 자리도 길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자라고, 살아나간다고. 결국에는, 사랑할 수 있다고.
p.159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정오를 지난 햇볕처럼 이 슬픔도 조금씩 줄어들게 되리라는 걸. 그럼에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고 표정처럼 말투처럼 내 일부가 되리라는 것. 그리워하는 일에는 언제나 슬픔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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