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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로의 초대 - 김창래 교수와 함께 사유하는 철학 축제
김창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8월
평점 :
유사 이래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이어져왔다. 이렇게도 섞어보고, 저렇게도 들이밀며 여기저기 꾹꾹 찔러봤지만 어째 그 결과가 영 만족스럽지 못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을 전적으로 철학자의 소통능력이나 바쁘고 즐거운 현대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솔직히 조금은 있다). 철학의 본질적인 성격, 사유라는 무형의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바로 그것이 곧 진입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주제가 관심사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분파의 주제를 논하면 그만이다. 그 어떤 대가의 사상이라 할지라도 납득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반박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관념을 사유하는 일, 당장의 현실과는 관계 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정답이 없는 질문에 매달리는 활동 자체에 흥미가 없고 도저히 이어나갈 수 없다면 그야말로 방도가 없다.
한 마디로, 어렵다. 명쾌한 답을 내릴 수도, 두 손으로 움켜쥘 수도 없다. 만학의 왕, 인문학의 꽃, 모든 학문의 시초임을 주야장천 피력하는 철학이 만년 인문학 골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이유다.
철학의 기본은 사유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치열한 뜬구름 잡기다. 끝날 수 없는 질문에 모호할 수 밖에 없는 답을 찾고, 드높은 이성의 탑을 논리로써 쌓아나간다고 해도 굶주려 죽어가는 이에게 당장 밥 한 술 떠먹여주지 않는다.
다른 분야 또한 그렇듯이,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어휘도 일상어와는 거리가 있는 탓에 현실에 철학자 꼴은 썩 좋지만은 않다. 사방팔방 캐묻고 다니다 형장의 이슬 내지는 감방의 한숨으로 사라진 철학자만 해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이런 이유로 철학은 배부른 자의 공상, 무가치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 오래다.
그러나 철학은 무엇보다 실생활에 가까운 학문이다. 당장 굶어죽는 입에 떠넣는 쌀을 키워내지는 못하지만 왜 내 것을 떼어 남의 입에 넣어주어야 하는지, 왜 산더미같이 쌓인 재화를 두고도 누구는 굶고 누구는 부른 배를 두드리는지, 왜 사람은 간신히 먹고 자는 삶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지, 어떻게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아름답고 추한 것을 구분하며, 새로 등장한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제한하고 이용해야 할지... 인간이 맞닥뜨리는 모든 ‘왜’와 ‘어떻게’, 그리고 ‘만약’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 세계 안의 존재를 사유하는 학문이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전지전능한 초월자가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사유하는 자의 존재 자체까지 회의하면서까지 추구하는 절대적인 정답, 진리에는 영영 닿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아는 존재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모든 문제를 한 치의 오차나 시행착오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존재에게는 숙고가 필요치 않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인간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끝없이 질문하고 사유하고 부딪히며 논쟁한다. 그렇기에 철학은 철저히 인간의 학문이다.
사유하는 존재, 이성을 가진 동물, 지성의 선봉이라는 드높은 오만을 버리고 기원의 기원을 파고 들어갈 때, 무지를 인정하면서도 사유의 고통을 그 누구에게도,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떠넘기며 회피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철학이 열어젖히는 세계 안의 세계, 세계를 뛰어넘는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저자 김창래 교수는 철학의 어떤 분파가 최고나 근원임을 주장하지도, 절대적인 답이 있다는 희망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philosophy,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 뻗어나온 가지를 함께 그려갈 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철학에로의 초대다. 때문에 앞뒤를 잃고 짧은 문장이 되어 맥락없이 슬로건이 되는 문장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다독여주지 않는다.
다만 찰나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무한과 영원을 치열하게 쫓아온, 혹은 근원을 파헤쳐온 길을 따라가며 자 갈 길이 멉니다, 하고 가만히 기다려줄 뿐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수많은 철학자가 걸어온 길이 아니던가.
거부할 수 없는 초대, 선택의 자유가 있으나 없는 질문과 사유로의 초대를 함께할 독자에게 권한다. 또한, 재미없다 도리질을 치면서도 슬그머니 눈길을 주는 독자에게 권한다. 다 울었니? 자 이제 생각을 하자. 오세요. 철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