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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지음 / 래빗홀 / 2023년 6월
평점 :
*출판사 래빗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반성합니다... 나쁘다고 하자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좋다고 하자니 그건 또 좀 아닌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저자든 소개문이든 추천사든 생각 않고 다 뒤로 한 채 본문으로 뛰어드는 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저자 소개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비밀에 부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찾다보면 뭔가 단서라도 나오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서 찾지 않았기에 필명인지 본명인지 알 수 없는 이름과 직전 수상 이력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와중에 바로 옆에 둔 수상작품집을 뒤지자니 그건 또 되도않는 자존심이 걸려서, 들이받는 심정으로 파악해보자, 여러 작품을 묶어서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읽었지요.
그렇기에 이 글은 안다고 하자니 허풍이고, 모른다고 하자니 거짓말인 이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바가 없는 셈 치고 덤벼든 기록이다, 이겁니다.
시작해보자. 표제작을 비롯해 7편의 단편, 이 한 권의 책을 어떻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에게 권하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세계관에 동원되는 이론의 난이도로만 보자면 제법 허들이 높은 축에 속하지만 저자 본인의 성격 탓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자 앉아보세요, 하고 풀어주는 느낌이니 소스코드니, 복제인간이니 가상현실이니... 다소 난해한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을 대단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겠다.
동시에, 쉽게 권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장이 일종의 상자라면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작가가 공들여 골라 담은 선물과도 같다.
다만 포장을 풀어헤치는 일이야 어렵잖게 해낸다고 쳐도 짠, 하고 나타난 것에 ‘선생님 이거 정말 선물 맞아요?’ 내지는 ‘읽을 사람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나요...?’를 묻게되는 건, 그마저도 즐거움이라고 말하고픈 작은 마음이려니, 하시라. 하기사 살다보면 테마파크에도 메르헨이 있고 귀곡산장이 있고 그런 게 아니겠나.
수차례 말해왔듯이, SF는 현실과 가장 맞닿아있는 장르다. 그것만큼 저자와 독자가 놓인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반영해내는 장르도 없다. 철학이 결국 사람과 세계에 대해 논하는 학문임을 생각해본다면, 철학 또한 그러하다.
어째서 그러한가. 무엇 때문에 지금, 여기의 물리적 현실을 떠나 사고할 것을 요구하는 두 분야가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내는 것일까.
작품 내의 세계를 빌어 저자는 묻는다. 육신을 떠나 존재하는 인간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던지는가? 극단으로 치달은 자본주의는 ‘자연스러운 질서’ 아래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뤄낼 수 있는가?
아주 많은 것,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육신과 기억과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것조차 가능케 하는 기술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 반대인가?
p.195 눈앞의 소우주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반영하는 잔영에 지나지 않는 걸까, 혹은 우리 우주와 마찬가지로 펄펄 살아있는 실체인가.
과연 우리는 현재의 지구에서 그래왔듯이 ‘신세계의 주인’으로 존속할 수 있는가? 영원의 모양, 뫼비우스의 띠, 무한히 이어짐을 의미하는 선을 따라 찻잔을 돌리면, 그렇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당도한 우주 안의 우주 안, 의 우주 안... 그곳은 어디라고 말해질 수 있는가.
작가는 묻는다. 가능성을 박탈당한 영원에 갇힌 존재는, 무수히 복제되고 분열되는 나는, 정교한 시뮬레이션 한구석에 창조된 일개 부속품인 우리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낼 수 있는가?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가?
저 바닥부터 흔들리는 믿음, 지독한 비웃음, 이대로 가다간 뭐가 어떻게 될 지 아주 잘 알고 있지 않냐는 호소.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겠냐고, 도망치고 또 숨어든 환상같은 세계가, 아무리 정교하게 모방하고 재현해낸다 하더라도 눈 가리고 돌아선 곳의 모든 것이 없어지겠느냐고 물으며 재우치는 모양새가 매섭다. 그만큼 절박하다고 봐도 좋으리라.
p,207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듯 자유의지란, 사실은 환상에 불과할까. 물리적 인과의 연쇄 작용은 자유의지가 끼어들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걸까. 설령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끔찍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정말로 자유로운 것일까.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닫는 작별 인사를 빌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어느 소스코드 속 우주 안의 305번째 복제-재생성일지 모르는 당신에게. 부디 다음이 있기를. 안녕, 안녕히.
p.386 다시 자네에게 또 다른 옛날이야기를 건넬 기회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