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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사랑에 대하여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울리히 베어 엮음, 최성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4월
평점 :
*출판사 세창미디어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랑, 고래로부터 그것의 가치를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랑, 그 흔하고도 무거운 이름이 사람을 만들고 살리는 감정의 정수와도 같다고 목놓아 부르짖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두 번째, 세 번째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처럼.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말년의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Lieben belebt. 사랑이 살린다.
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말했다. 문명의 첫 신호는 부러진 흔적이 있는 넓적다리뼈라고. 수렵과 채집이 생존조건의 거의 전부였던 시대에 운신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이를 회복할 때까지 돌본 이가 있었을 거라고,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금 발을 디딜 때까지 곁을 지킨 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홀로 두지 않는 것, 보살피고 돌보고 아끼는 그 행위가 인간 문명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61 친절과 사랑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이자 아주 귀하게 찾아낸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 이 향기로운 치료제를 되도록 절제하여 사용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친절을 절제한다는 것은 가장 무모한 몽상가의 꿈이다.
이따금 말한다. 어리고 약하고 찰나에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고. 그것이 어리고 약하고 찰나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에 마음을 주지 않는 법을 알지 못할 뿐더러 저항할 수조차 없다고. 그러니 사랑은 지독하게 어리석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리는 동시에 죽이는 마음이다.
기꺼이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것, 기꺼이 무지와 낯섦을 수용하면서도 앎을 자만하게 하는 것, 다름을 끌어안으면서도 부정하게 하는 것. 모욕과 굴종을 감내하는 동시에 수치심으로 물들이는 것. 알지 못하는 새 피어나 언젠가는 스스로를 집어삼키고 타오르는 불길처럼.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 의지 밖의 것.
81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잔인하다. 그 밖의 모든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조차도 무시된다.
89 나는 이제 신을 사랑한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은 나에게 너무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죽일 것이다.
동시에 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다. 사랑의 명명에는 최소 둘 이상의 존재가 필요하나 행위자는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가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랑은 이질성, 즉 나-행위자와 상대-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되나 행위에는 나의 즐거움 이상이 필요하지 않다. 비단 사람-타인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15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이 나와는 전혀 다르며, 정반대의 방식으로 생활하고 행동하며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 아닌가? 사랑이 이런 정반대의 방식을 기쁨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정반대의 방식들을 극복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일조차도 한 사람 속에 있는, 융합될 수 없는 이중성(또는 다중성)을 전제 조건으로 하니까 말이다.
147 결국 인간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하는 대상은 아니다.
223 사랑할 때보다는 두려워할 때, 인간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두려워할 때 우리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이에 반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에게서 아름다운 것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자 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되도록 높이 평가하려는 은밀한 충동을 느낀다, 이 때 우리가 스스로 속는다면, 사랑은 즐겁고 좋은 것이다. 사랑은 오판이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가? 사랑의 이름으로, 혹은 사랑의 탈을 쓰거나 사랑으로 착각되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운가? 도무지 사랑같은 말랑말랑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생의 어느 언덕에서 붕괴된 영혼으로, 쓰러진 짐승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던 이의 마음에는 어떤 형태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 사랑이 익숙하고 어리석은 동시에 지독하고 사나우며 고귀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 사랑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또 휩싸이는가. 니체는 말한다. 사랑 역시 환대 혹은 증오와 마찬가지로 배워야 한다고. 사막에 내리는 비처럼 영혼을 적시는 그것은 드물게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177 삶이란, 최고의 의미가 있으나 드물게 일어나는 개별적인 순간들과 기껏해야 그러한 순간들의 그림자일 뿐이면서 우리 주변에 부유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공허한 틈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 봄날, 아름다운 선율, 산맥, 달, 바다 ― 이것들은 모두 우리 마음에 단 한 번만 온전히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사랑의 의미와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편협해지는 동시에 증오와 고립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필연적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면, 전능한 절대자에 기대지 않기란 지극히 어렵고 드문 일일 수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느 평론가와 시인의 말처럼 사랑을 발명해낼 책무가 있다.
인간에게는 신을 발명해냈듯 사랑을, 어렵고 모순적인 그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 연약하면서 나약하기까지한 이 생물이 세대를 넘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모든 모순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랑이 살린다. 사랑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나 영혼을 적시는 단비, 우리는 이 찬란하고 잔인한 마음을 배워야만 한다고.
105 인간은 어릴 때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교육과 기회를 통해 이런 감각들을 훈련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며, 다정한 사람들이 만든 이렇게 섬세한 장치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244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것에 관해 호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공평함, 관용, 그리고 온후함을 보이면 이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그 친숙하지 않았던 것은 점차 베일을 벗고 새롭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그것이 우리들의 환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방식으로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도 역시, 배워야 한다.
213 내가 들어 본 가장 고상한 말, “진실한 사랑을 할 때는 영혼이 육체를 감싼다 Dans le véritable amour c'est lâme qui enveloppe le cor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