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씨 덕분입니다 - 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찐모녀 블루스
장차현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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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문제아’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젠 그 ‘문제아’ 없인 하루도 살 수 없게 됐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현실모녀의 블루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겠지만,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현실모녀의 블루스는 높은 확률로 "난리 부르스!"가 되기 때문일까.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태어난 아이는 죄가 없고, 모든 탄생은 그 자체로 기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육아의 부담을 떠안는 것도 모자라 사회의 적대적 시선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하는 이의 고충을 없는 셈 치거나 "숭고한 희생" 따위로 무마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와 딸, 다정다감하고 사근사근한 관계? 꿈 깨시라. 내가 해봐서 안다. 뒤집어지게 싸우고, 하루가 뭔가, 반나절도 안 되어 후회하고 밥먹을 때 쯤 슬그머니 화해했다가 며칠 안 가서 똑같은 문제로 싸우고 "너/엄마 때문에 못 살아!"를 외치는 게 흔히 말하는 모녀지간 아닌가. 부르스가 맞긴 하다. 그 부르스가 로맨틱은 집어던진 난리부르스라 문제지. 서로의 세계이자 사랑이었다가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지는 사이였다가 결국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게 모녀지간의 부르스라면 부르스다. 장애인이라고 다르겠는가.
p.188 표준치에 제외된 사람들을 열외로 생각하는 오만함의 정체는 무얼까? 표준치에 오르려고 모두들 아우성을 치고 있다. 난 갑자기 내 안의 표준치를 바꾸고 싶어졌다. 행복의 기준은 내 안에 존재한다.

장애당사자 혹은 그와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하는 이의 이야기를 제3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하게 된다. 어쨌든 간에 나는 그들과 한 집에서 먹고 자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섣부른 감동은 무례한 동정 내지는 없느니만 못한 흥미가 되리라, 지레 겁부터 먹고 만다. 이런 비겁함이 사는 동안 수많은 은혜씨와 장차현실씨를 만나 함께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놓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장차현실씨와 은혜씨가 맞닥뜨렸던 수많은 차별의 벽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인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발달장애인에게도 갈 곳이 있어야 한다. 장애아동의 양육자도 주저없이 또래 양육자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전국을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알맞은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급우들과 다른 양육자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연신 허리를 숙이지 않아야 한다. 딱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이 사람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또한 "평범한" 이들처럼 자라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며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닐 이유가 없기에. 아직까지도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p.144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선생님이 울더라. 내가 불쌍해서 운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장애인이 불쌍한 존재임을 확실히 인식시켜주었나 보다. “나 그렇게 불쌍해?” 화가 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낯선 즐거움을 누리기엔 세상은 너무 서툴다.
p.195 누군가 젊음, 건강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나에게 이야기했겠지만 귀담아듣기에는 일하고 싶은 젊은 욕망과 장애인 아이의 돌봄을 국가가 외면하는 사회적 간극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자립이 모든 것을 홀로 해내는 것이 아닌 사람 사이에서 살아나가며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면, 양육자의 역할은 아동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일원으로 성장하는 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생계와 장애아동의 양육의 책임자가 된 장차현실씨가, 혼자에서 두 사람, 둘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고 했던가. 아이가 어른을 자라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성장은 단순히 해를 넘기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필요하다. 부딪히고 얽히는 경험이 세상을 넓고, 다양하게 구성하며 그로 인해 개인을 더이상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아닌, 사람과 이어진 세계 안의 존재로 성장하게 한다. 그러니 제목의 "은혜씨 덕분"은 장차현실씨와 독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감사와 사랑을 담아, 어딘가에 존재할 수많은 동료 시민들에게, 은혜씨, 장차현실씨 덕분입니다.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 덕분에, 라고.
p.129 장애아 부모 중 아이 돌보는 역할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엄마들은 마치 아이의 장애가 자신의 탓인 양 가족들 사이에서 주눅 들고 남편에게도 미안해하며, 아이를 위한 헌신을 이래저래 강요받는다. 장애아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조차 엄마들의 개인적인 삶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p.186 그리고 난 결심한다. 난 아이에게 전부이지 않으리... 아이에게 중요하고 좋은 사람이 많아져야 아이는 진정 오래도록 행복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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