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 페미니스트 교사 마중물 샘의 회복 일지 ㅣ 점선면 시리즈 1
최현희 지음 / 위고 / 2022년 8월
평점 :
*출판사 위고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읽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던 책이다. 으레 책을 두고 하는 고민이란 대부분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일 터이나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에세이에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글을,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쓴 모든 문장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나는. 알량한 위안거리로 삼아버리면 어쩌지, 따위의 고민으로 인해 이 책은 침대맡 책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제법 오래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용기가 필요했다. 비겁한 사람이라 타인의 시간에서 용기를 얻어야했다.
양육자도, 교육자도 아닌 나의 좁다란 세계에 들어온 "마중물샘"이라는 이름(성함...?)이 들어온 건, 아마도 좋은 일은 아니었을 테다. 마중물샘의 블로그를 몇 번 보다 아주 정해놓고 찾아들어가면서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때가 수두룩했으니. 그렇게 무관심했다. 어린이와 생활을 함께하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마중물샘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이것은 부끄러운 나를 참회하는 데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제목에서처럼 "다시 내가 되는 길"의 일부일 뿐이다.
216
통증의 실제 느낌이 어떤지를 묘사할 때 말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는가? 언어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잠잠해진 뒤에야 찾아온다.
'세상'이란 이름 아래 사람은 너무도 쉽게 말한다. '당장은 어떻게 못 한다', '이만하면 전보다는 낫다', '너의 피해의식일 뿐이다', '그래도 그렇지 화를 낸 건 심했다' 등등. 침묵하라, 가해에 동조하라, 너의 피해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해라. 기울어진 운동장, 평등하지 못한 세상, 위협적이고 부당한 세상에서 '내가 되는 나'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는 출간 때 그렇게 기뻐하며 읽어놓고도 말을 아꼈던 책이다. 아마 그 즈음의 나는 사람이라기보단 사람 형상의 넝마 정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내 시간이, 내 길이 버거워 휘청거리는 마당에 남의 마음까지 소화할 수는 없다고, 방구석에서 눈물콧물 짜며 읽어놓고도 피해버린 데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늦게나마 변명해본다. 다시 말하자면 나름의 사정이 변명이 될 정도로 소중하고 눈부신 기록을 엮어낸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02
성차별과 편견에서 자유롭게 자란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다. 법과 제도의 평등이 편견과 차별 없는 사회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다'는 것들을 의심하고 낯설게 보고 다시 보고 질문해야 보인다. 그래야 바뀐다. 아주 느리게 하나씩 하나씩.
225
연약해 부서지더라도 그걸 버티는 과정과 재건의 시간을 거치는 순간들의 나는 약하지 않다. 버티다 보면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오늘 같은 변화가 온다. 그리고 알 수 있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신비로운 비밀에 대해서. 연약하지만 약하지는 않은 세상의 많은 이들과 연결될 수 있다.
자주 했던 말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위로가 위로를, 이해가 이해를, 변화가 변화를 부르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중물샘의 오랜 회복일지, "다시 내가 되는 길"에 동행할 모두에게 행복하고 나른하고 깔깔 웃다가도 싫은 건 툭 털어버리는 하루가, 누구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도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이 당연한 것이기를 바란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숨을 쉬고 또 하루를 시작해 힘든 날엔 화도 내고 소리도 좀 지르고, 아 할 일 있었지-하는 와중에 아니 어느새 또 트위터를!의 순간도 좀 갖고 말이다(그래, 수제트윗 좀 써주시라. 이왕이면 나 심심할 때). 그렇게 스스로가 되는 길의 길목마다, 언젠가의 끝에 쉬어갈 자리가 있기를 바란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서로에게 동행자, 쉼터, 눈부신 나날이기를.
277
내 안에는 남에게서 받은 위로들이 많이 쌓여 있다. 위로는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흐르게 되어 있으므로 나에게는 남을 위로하기 위한 엄청난 자원이 있는 셈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힘든 삶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잘 버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