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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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언제부터인지 그러니까, 그러므로, 그래서 따위로 말을 시작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뒤에는 으레 어쩌면, 주저하는 마음이 따라붙기 십상이고. 결국 두려움 반 자진 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우리는... 다소 유치하고 초라한 고백으로 말꼬리를 흐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모퉁이로, 옷자락 뒤로 숨어버리는 마음이 그러하듯이.
장희원의 소설집 『우리의 환대』 다른 언제도 아닌 이 계절에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찬 바람이 스치는 벽에 햇살로 새겨지는 그림자는 닿을 수 없는 것의 부재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어쩌면, '부재의 현존을 드러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의 자리에는 그림자 외에 다른 것이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표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사실은 조금 차갑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르게 목차를 먼저 읽었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표제작인 "우리의 환대", "작별'과 "기원과 기도"를 지나 "우리가 떠난 자리에"로 맺는 글들.
각각의 수록작들은 결핍과 부재, 이별로 이어진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없는 것, 비워진 것, 떠나간 것들로 채워지는 관계라니. 잠들지 못하는 밤에 몇번이고 중얼거리고 뒤척여본 지금은 안다. 그것 또한 지극한 사랑이고, 우리(畜舍)와 우리의 환대가 될 수 있음을.
언젠가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늘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인적 드문 도로에 가만히 누워본 적이 있다(그 날 본 하늘이 정말 마지막이 될 뻔 했다는 건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될까 싶긴 하지만). 꼭 쏟아져내리는 것 같아서. 온 시야를 채우는 하늘이 서럽고 또 다정해서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이후로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 무너지고 또 바뀌었다. 그날 비워진 것은 새로 채워지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갓 파헤쳐진 흙내를 풍긴다.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p.87
"왜 저런 걸 받았니?"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기는 그를 빤히 보았다. 정호는 더 참지 못했던 것을 후 회하며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어쩔 수 없었어, 형.” 정기가 말했다.
“저걸 받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어.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었다구."
정기는 아무런 높낮이 없이 차분히 말했다.

작가 장희원이 닿고자 하는 세상이 환대, 그러니까, 다가감의 이야기, 하나가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표지의 사진처럼 잡을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단절 혹은 상실을 그려내야만 했던, 그런 필요의 세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의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듯 우리 모두 다들 한구석이 무너져내린 채로, 그것을 알지 못한채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춥다. 적응할 틈이라고는 조금도 주지 않고 몰아친 추위에 몇십년을 겪었던 지난 계절의 느낌이 벌써 가물가물하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든 자리니 난 자리니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사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허전함이라는 것은 불현듯 파도처럼 밀려와 자 여기가, 하며 누군가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가. 이것을 쓸쓸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언젠가 보았던 '물의 뼈'라는 말을 두고두고 생각한다. 햇살이 지나온 흔적을 드러내는 것.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의 부재를 드러내는 자욱. 그림자와 같은 것이 아닐지.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빈 자리를 빈 채로 두는, 흔적을 흔적으로 둘 수 있는 마음이 용기와 다정함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畜舍)와 우리를 생각한다. 그 모호한 테를 덧그리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하늘의 느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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