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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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황금가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식스 센스"를 아는가. 지금이야 반쯤 고전(사람에 따라서는 퇴물) 취급이지만 처음 수입되었을 땐 희대의 센세이션이었던 그 영화. 만일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일까? 주인공이 멋지게 활약하고 반쯤 날아다니는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럴 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파악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그런데 만약 그들의 몰골이 영 처참하다면? 얼굴이 반쯤 날아가고 없다든지, 그때도 그걸 어떤 강점 비슷한 단어로 부를 수 있을까. 더욱이 본인 의지와는 하등 관련 없는 일이라면. 이쯤되면 이 꼬라지 안볼란다! 하고 눈을 뽑아버려도 썩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애절한 그리움과 미련, 중요한 진실을 파악하고 활약하는 우리의 주인공! 비슷한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기고픈 게 하나쯤은 있고 그걸 알아내도 좋을 게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야기는 밑도끝도 없는 사과로 시작한다. 제이미 콘클린, 우리의 주인공, 챔프. 때로는 모든 게 지나고나서야 풀어놓는 이야기가 더 무서울 때도 있다. 그러니 아예 말을 해주지 않는가. "이건 공포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잘 읽어보길 바란다(p.12)."라고.
작중 주인공은 수차례 이것은 공포물이라고 언급하지만 공포보다는 슬픔이 느껴졌다. 물론 그 어린아이가, 아니 누가 겪기에도 지나치게 잔인했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겠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가 누구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인지를 알고 있다. 작가가 쥐어주는 독자의 특권이랄까. 성장기이자 이별기에 가까운 이야기다. 이별과 상실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과 애도의 과정을 거쳐 한층 크게 자라나는 그런 이야기. 어쩌면 상실에 익숙해지고 삶의 굴곡과 타인의 악의, 개인적인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곧 성장이 아닌가. 분명 장르소설이다. 재미를 위해 쓰인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어린 아이의 성장통과 저자가 겪어온 시간이 담겨있다.
"하나만 더 여쭤봐도 돼요?"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죽은 이들은 우리의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행만 한다. 그 대답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응." 나는 질문을 했다(p.243).

거장의 귀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일단 집에 간 적이 없는데 어딜 봐서 귀환이에요... 거장의 출근,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도 재미가 보장된. 300쪽이 넘는 내용, 소설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앉은 자리에서 쭉 읽어내릴 정도로 흡입력있는 문장이다. 활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글쓰기에는 아주 통달한 양반이 아닌가. 역시.
죽은 작가의 미완작을 대필하는 장면에서는 스티븐 킹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상상해봤지만 허연 알궁둥이(조금 점잖게는 '배관공의 계곡')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글을 읽을 이들과 미래의 나를 위해 여기까지만 말하기로 하자.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운 분량이기는 하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 모든 일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능력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시시콜콜 하나하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급으로 상세히 써주기를 바란다. 회고록이 아니라 일대기였으면 좋겠다니까요, 한 열 권쯤 되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지만. 연작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으나 때로는 아쉬워도 딱 이만큼이 적절할 때가 있다. 작중의 미완작이 이 작품과 겹쳐지거나 또다른 세계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또다른 제이미 콘클린이 대필을 가능케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누구 하나는 유령이 되어야 하니 그건 좀 아쉬우려나.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알게 될 수도 있겠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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