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할 권리
아미아 스리니바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알라딘에서 이런 리뷰를 보았다. "소위 '섹스할 권리'라는 게 있는 것 마냥 작동하는 욕망의 역학이 한국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Justread, 2022)."
선거권 보장으로 대표되는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운동은 여타 인권운동과 마찬가지로 숱한 부침을 겪고 반대와 의혹, 조롱에 부딪혀가며 발전해왔다. 주류 남성 집단을 포함한 외부로부터의 탄압과 공격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 전제로서의 '우리'를 식별하는 일조차 한순간도 조용할 날이 없지 않았던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21세기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의 위치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떻게 말하고 또 넓힐 수 있을 것인가.
저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숱하게 제기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여섯 가지 논제를 통해 페미니스트 독자들과 그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페미니즘은 도덕주의와 궤를 같이하게 될 것인가? '위험요소'를 차단하고 '정신적인 가치'에 몰두함으로써 '올바른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 주제들은 잊을만하면(이 수식어가 진정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차고 넘칠 것이라는 확신에 더 화가 나지만) 온갖 인터넷 게시판과 칼럼, 토론 프로그램과 정치인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내용들이다. 혹자는 진정성을, 또 다른 누군가는 자율성과 무결성을 그 때 그 때 입에 맞게끔 곡해해서 떠벌리고 그것이 곧 페미니즘 자체와 페미니스트들, 페미니즘의 주체가 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이 되는 상황이다.
"누가 남성을 음해하는가?', "섹스할 권리". "포르노를 말한다", "학생과 잠자리하지 않기". 한국 사회에서 'me too 운동' 이전에도 유구하게 존재해왔던 '꽃뱀 신화'를 모르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아마 잠재의식 속 희미한 편견으로라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정말 허위 고발이 늘었을까? 정말 '간악한 여성이 강력한 처벌법을 이용해 선량한 남성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시도'가 크게 증가했으며 그것은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껴질 만큼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성적 접촉을 할 권리가 있는가? 성적 접촉 또는 관련 행위를 통한 욕구 충족은 국가 또는 사회가 개개인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에 해당되는가? 한때 한국에서도 제기되었던, 남성장애인에게 성적 욕구를 해소할 대상을 제공하는 것을 복지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도 욕망하지 않을 못생기고 사악한 여자들'이 '매력적이고 순종적이지만 성적 적극성을 띄고 나와 접촉할 여성'을 탄압하고 있는가? 포르노는 여성억압에 일조할 뿐만 아니라 성적 물화의 원인으로 기능하는가?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성평등과 권리신장은 가능한가? 여성 자신의 성적 욕망은 어떻게 간주되어야 할 것인가? 4B운동은 유의미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학습지도자 위치에 있는 남성이 여학생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교수자와의 성관계를 통해 학생 또한 일종의 권력 위계나 성적 만족감을 획득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성인간의 '상호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 아닌가?

어쩌면 이 책을 읽을 페미니스트 또한 (높은 확률로 읽지 않을) 안티페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질문과 지적에 반감을 표할지도 모른다.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 데에 불만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와 너희를 딱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유구히 제기되어온 이 문제에 언제는 나아갈 방향이 없었으며 해야한다고 다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고뇌를 주는 책이고, 불편감을 주는 지적들이다. 그러나, 불편한 일은 불편하게 해야한다. 나의 편안과 권력과 쾌감이 누군가를 짓밟아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온당히 그 발을 치우고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한다. 혹자는 묻는다. 그렇게 된다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치적, 사회적, 성적,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종속을 끝내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다(p.8)." 이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도 모른다고, 한번 해본 다음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같은 쪽)."

화려한 수식어보다, 강렬한 추천사보다 직접 읽었을 때 휘몰아칠 분노와 혼란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질 저작이다. 이 책이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을까. 바라건대,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언젠가는 지금의 폭력과 차별을 부끄러워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서문의 일부와 인상깊었던 문장으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언제나 하나로 수렴될 것이라는 환상, 우리의 계획에 예상 밖의 일이나 달갑지 않은 결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정치가 안락한 장소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 안주할 수 없다(p.13)."
"한 무리에게 샌드위치를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지만, 섹스에 대해서도 똑같은 요구를 할 수는 없다. 여기서 통했다고 저기서도 통하란 법은 없다. 섹스는 샌드위치가 아니며 사실 다른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정치적으로는 이토록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침범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은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있는 그대로 섹스를 이해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