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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평점 :
*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이 책을 읽을 어느 독자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러니까,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구질구질하고 뜨겁고 축축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애도에 대해서 말이야. 울음이 터지고 아름다운 이별의 시를 읊는 대신 초라하고 불가해한 말들, 땀과 턱끝까지 치받는 숨을 몰아쉬는 그런 애도, 그런 사랑, 끓어오르고 썩어갈 듯 고이는 그런 마음들에 대해서 말이야. 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작중 인물들에게 어떤 논리적이고 올곧은, 합리적이고 존경할만한 이상향을 기대한다면 채 열 장을 읽지 못하고 덮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나이트 러닝' 조차 이게 말장난인지 상상인지 코메디인지 알 수 없는 사건들의 나열 아닌가. '한쪽 팔을 잘라서라도' 잃어버린 사람을 만나고싶다는 그 마음이 자르고 또 잘라도 돋아나 어느새 한가득 쌓여버린 팔의 무더기와 다를 바가 있을까. 그것을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너무 많아 태워버리려 놓은 불이 온 산에 번져버리고 살기 위해 내달려야 하는 그 마음을 그리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p.31 "나도 그 마음을 알아요. 팔을 자르는 마음." (...) "한쪽 팔을 잘라서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양쪽 팔을, 다리를 다 잘랐을 거예요."
p.32 남들이 볼 땐 희비극이 공존하는 죽음이었지만 우리에겐 비극뿐이었다. 그리고 잔느는 지금도 매일 팔을 자르고 있다.
p.100 "뜨거우니까 걷자는거야." 속죄에도 적절한 온도가 있는 걸까. 정말로 참회한다면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게 맞겠지만 선글라스에 양산까지 장착한 유구에 비해 민얼굴, 맨머리의 나는 좀 불공평하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속죄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유구가 아닌가.
수록작 '우리가 소멸하는 법'은 떠나간 존재 교호를 중심으로 한 나와 유구의 대화로 진행된다. 시인 기형도의 죽음에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지.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김훈의 추도문을 떠올렸다. 다시는, 다시는. 남겨지는 일은 때때로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일과도 같다.
총 여덟 편의 이야기,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참... 뭐랄까, 나사빠진 사람이랄까, 어딘가 서툰 면이 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모두가 사랑스럽고 또 아슬아슬하다. 이 넓은 우주 속 찰나의 시간을 스쳐지나가는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고작 한 인간의 생애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을. 현존의 부재를 넘어 부재의 현존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애도라면 이 책은 애도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결핍과, 상실을 견디고 혀끝으로 굴리며 끌어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p.119 엄마가 죽어버렸다고 나를 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엄마도 엄마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누나가 집을 나가버린 일도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외로울 때는 옷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같이 있었을 때만을 기억한다. 교호를 만나고부터는 사는 게 덜 무서었다. 어쩌면 나의 어둠이 교호를 채워서 그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교호는 사방에서 어둠을 모으고 있었다.
작가 이지는 연민과 애도와 잔류하는 감정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구질구질함이고 누군가에겐 절절한 사랑 혹은 그리움 혹은 차마 떼낼 수 없는 어떤 감정의 찌꺼기들을 한 데 그러모아 끌어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고 서러운 그 마음에 말을 얹지 않고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때로는 비지땀을 흘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사는 이유가 뭔지, 뭘 어쩌자고 이 고생을 하는건지, 그 때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런 문장들, 그런 글.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뭘까. 오늘의 나도 다가오는 추위에 조금 옹송그리며 곱씹어본다. 스쳐지나간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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