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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비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느날, 전대미문의 세계적 재난으로 인류의 반이 사망한다면? 나이, 신분 가릴 것 없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간다면? 가난한 사람, 젊은 사람 가릴 것 없이 손 쓸 겨를도 없이 숨이 끊어진다면? 익숙하다면 익숙한 소재다. 재앙, 인류절멸의 위기, 첨단과학과 자본으로 무장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우리는, 적어도 여성은 이런 재난상황에 재난의 원인 외에도 한 가지 위험을 떠안게 된다. 약자로 전락하는 여성 신체. 여성을 포함하는 약자의 신체가 강자-약탈자-남성 존재에게 위협당하고 사회적 지위 또한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를. 그러나? 만일 그 재앙이 남성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같이 남성 간의 위계가 비일상적으로 공고해져 비-남성집단이 그 아래의 하층계급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집단이 한순간에 절멸 위기에 처한다면? 여성의 세상이 오는가?
처음의 질문의 다시 생각해보자. 어느날,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해 남성의 90%가 사망한다면? 나이, 경제적 계급을 가릴 것 없이 죽어버린다면? 극도의 여초사회가 도래한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이 소설은 이 도발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책 전체가 내용을 나타내듯,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의) 전부 여성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수많은 여성의 이름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응급실에 내원한 한 환자의 급격한 상태 악화, 고열, 손 쓸 겨를도 없는 사망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전염병인가? 응급의 어맨더는 최근 입원기록을 확인하자마자 전염병을 의심하지만 사람 사는 일과 조직 돌아가는 꼬라지는 어디나 비슷하다지. 정부기관의 태도는 영 시큰둥하기만 하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안감, 그리고 기시감. 이것이 결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저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공포. 독자는 아직 처음이니 가벼운 사건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겠지만, 분량이 어지간한 사전에 육박하지만 않았어도...... 재난영화의 문법이 대체로 그러하듯 사건 등장인물들의 태도 변화를 보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그 인물이 현실에 꺾이지 않으려 고군분투할수록 더욱.
최초보고자 어맨더의 앞에서 사망한 환자에 이어 전세계에 급속도로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하고, 이들의 공통점은 남성, 그 중에서도 XY염색체의 남성이다. 호흡기? 점막? 음식?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대유행에 부유층은 전염병 확산세를 피해 사유지로 이주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전쟁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세상에서 기존의 남성과 여성이 체감하던 위협의 범주가 역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출이 어려워지고, 접촉이 어려워지며, 각종 요직에서 비중이 줄어드는 것, 그 모든 것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은 이미 익숙하다면 익숙한 광경이 아닌가. 여성은 감정적이다. 여성은 연약하다. 여성은 비이성적이다. 여성이 대표를 맡는 것은 어색하다. 여성에게는 남성이 필요하다.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성적인 시선을 받거나 행동거지가 성적인 신호로 해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미 익숙하다면 익숙한 편견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근거가 무너진 세상에서 앞선 모든 편견과 위협이 남성에게 쏟아진다면? 그것 또한 익숙하고 당연하여 감내하지 않을 방도가 없는 현실이 되는가?
서술자로 구분되는 소챕터는 다양한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즐거움을 준다. 또한 앞서 말했듯 서술자 대부분이 여성이면서 동시에 기혼자이(었다 사별하게 되었)거나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은 그들에게도 소중한 가족과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단순히 기존의 관계를 역전하는 데에서 그치는가, 이때다 하고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이 펼쳐지는가, 아니면 돌봄과 애정, 관계에 대한 갈망과 밑바닥에서도 일어나는 의지를 볼 수 있을 것인가. 결말까지의 여정에서 기꺼이 감수할 긴장과 즐거운 피로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남자들아 기죽지마라 그냥 죽어라" 정도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집필된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대유행 전후의 세상을 소름끼치게 정확히 그려내고 있다. 만일 이것의 정체가 페미니즘 소설이냐 묻는다면 당신이 묻는 "페미니즘 소설"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실제로 들었던 말처럼) "받은 대로 돌려준다니 너무 유치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럼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무엇이냐고 되물을테다.
시대반영부터 재난상황에 대한 인간의 유구한 아수라장, 젠더권력과 계급, 국가별 의료격차와 정치, 재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과, "0호 환자"의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가 코로나 대확산 초기부터 지금까지 주욱 놓치고 있는, 언론이 생존자에게 마땅히 갖추어야 할 예의까지 아예 시리즈로 냈어도 무리가 없었겠다고 생각할만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과연 지금은 괜찮으냐고, 이대로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생존자 혹은 남겨진 자가 된다면 그 이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겠냐고. 바로 눈 앞에 도래한 현실을 계기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반복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재앙, 재난에 똑같은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