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
박신규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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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시인은 왜 시인일까. 소설가도 화가도 아니고, 의사도 판사도 아닌 시를 쓰는 사람. 스승도 대가도 아닌 사람. 시 옆에 나란히 선 인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고민할 때가 있다. 시-인, 시와 사람 혹은 시를 쓰는 사람. 그 소박하고 절박한 이름은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각 장마다 박신규 시인의 에피소드와 그에 담긴 생각, 내용과 관련이 있거나 이어지는 시로 구성되어 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이 책을 만날 독자라면 책 전체를 한 번에 들이켜지 말고 차근차근 곱씹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일러스트나 으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도는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라든지, 서릿발같은 촌철살인, 네가 다 옳다 위로해주는 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어찌보면 낡은 사고일 수도, 지루할만큼 담담하고 고요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는 짧고 긴 글이 이어질 뿐이다. 그러나 잔잔한 물 같은 글을 따라가노라면 보면 어느새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커다란 강 한 가운데 서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흐르는 대로 고요한가보다 했던 수면 아래에는 얼마나 사납고 거센 물살이 흐르고 있는지, 기원도 종착지도 알 수 없는 흐름이 생겨나 패이고 쓸어내려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을지, 독자로서는 그저 어렴풋이 더듬어나 볼 뿐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책 디자인은 규격화된 네모지고 납작한 표면을 어떻게 채워넣느냐, 그로 인해 그 책을 집어드는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자 결과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날, 나는 꼭 오래된 얼음 아래를 흐르는 물 혹은 산만큼 거대하고 그 두께가 동굴만치 엄청나다는 오래된 빙하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시작된 감상은 마지막 글을, 문장을, 마침표를 지나 마침내 끝을 말하며 덮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오래된 사람이다, 오래된 생각, 오래된 고민과 사랑을 말하는 시인이구나. 하고.
사랑없는 시는 존재할 수 없다. 온 마음이 부서지도록 사랑하고 또 부딪다 마침내 산산조각난 폐허에서 간신히 건져내는 말이 곧 시가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 숨죽여 불러본 이름이, 빈 집에 갇힌 것이, 심장소리를 빼닮은 가을 모과가, 지구만큼 커다란 슬픔이, 문득,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는 그 깨달음이. 모두가 사랑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절실하고 절박한 사랑, 삶의 순간을 잇는 깨달음, 그것이 시가 된다고 믿는다. 그것이 "시를 잘 쓰는 법이 있나요(p.147~)"에 대한 작가의 답과 멀지 않다고.
여러모로 바쁘고 숨차고 또 화려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있던 줄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시대에 "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라고 말하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음을 고백하는 글들이 참 귀하다. 어쩌면, 어쩌면 이 말도 안 되는 고통이 그저 고통뿐만은 아닐거라는 생각과 함께 여물었던 시절들을 껴안고 나 역시 모든 순간이 시였음을 속삭여본다.

*알립니다
위의 "사랑"들은 순서대로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빈 집(기형도)', '가을 모과(문태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 '이탈한 자가 문득(김종서)'의 것이다.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은 작품이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덧붍여 신철규 시인이 새 시집 『심장보다 높이』(창비)을 냈으니 꼭 한 번 읽어보세요.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마음을 함께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모든순간이시였다 #박신규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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