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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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애착. 생애 초기에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이에게 형성하는 강한 감정적 유대를 말한다. 표준국어사전에서는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나운 애착". 단어의 의미를 따지자면, 아주 모순적이면서 동시에 단박에 이해하게 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부모는, 특히나 엄마는 자녀에게 언제나 죄인이라는 말을 한다. 해주고 또 해줘도 미안하다고, 자신도 서투르고 힘들어 상처를 주고 최고를 최선으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기만 하다고. 많은 경우에 딸은 엄마에게 죄인이다. 특히나 "착한 딸" 내지는 "착하려고 애썼던 딸"이라면 더더욱. 인간은 자주 접촉하는 타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생애 초기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는 양육자라면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이 생애 전반을 뒤덮는다. 그저 기억으로만 남지 않고 결국은 그토록 싫어했던 말과 행동, 사고를 답습하게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 비비언 고닉의 기억과 현재를 오가는 서술에서 유별나게 이례적인 특징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답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정에서 어디서나 들어본 그런 가족과 함께 자라났다. 그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쏟아지는 폭력과 지긋지긋한 애증이 낯설 것 없는 세상을 살아온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경우 딸은 엄마에게 죄인이다. 엄마의 고통과 죄책감을 자기 것처럼 흡수한다. 밀어내다가도 끌어당기고, 내쳐지다가도 끌어당겨지는 비난과 사랑과 '너는 나처럼 살지 말기를'과 '네가 뭔데 내 뜻을 거부하고 감히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는가'의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p.26
혹자는 작중의 엄마를 딱 잘라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걸 몰라서 모든 딸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증오하는 엄마-를 말했을까. 자식이 소유물이 될 때, 독립된 인간이며 나의 젊음과 희생을 먹고 자라 나를 그저 그런 늙은이, 틀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볼 때의 분노와 공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일테다.
"엄마를 분노로 떨게 하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p.166

비단 "엄마와 딸"의 지지고볶는 관계-만을 푸념처럼 늘어놓는 내용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자유와 혼란을 오가는 세상의 모든 여성에 대한 고백과 성찰이기도 하다.
"이제 갓 엄마가 된 이들은 그저 어디선가 본, 배워야 한다고 주입받은 다른 여자들의 행동과 습관을 모방하면서 어떻게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p.75
"삶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약할 수록 자기 방식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서로를 분리시키면서 연민도 함께 거둔다."
-p.177
작중 저자와 모친의 행적을 모두 긍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수도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옳은 선택만을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더더욱 그랬구나, 이 사람의 삶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고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시간을 겪어 지금에 도달했구나.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연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그 사람을 그이의 시간 안에서 이해하는 것.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다. 우리는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다.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그저 바라보는 두 여자다. 엄마는 젊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목도하고 있는 바, 그 혹독한 진실에 깊이 침윤되어 있다. 엄마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모른다."
-p.301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건 불쾌한 일에서 벗어나는 엄마만의 방식, 당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방법, 옳고 그름을 아는 법, 당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순간 엄마의 삶의 이해되면서 묵직한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p.309

근래에 이렇게 힘들었던 책이 없었다. 싫었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정말 좋았어요. 선명하고 커다란 거울이 내 삶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나도 괴롭고 너무나도 좋았어요. 딱 한 가지 우려를 덧붙이자면, 앞서 말한 이례적이 않다거나 특별하지 않다거나 하는 말들은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말해도 어 맞아맞아, 나도. 라고 한다는 건, 그러면서도 폭력과 애증이었음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 점에 유념하여 저자의 시간과, 고백과, 사납고도 잔인한 애착에 대한 기록을 마음 단단히 먹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사납고도 끈질긴 애착관계에 놓인, 혹은 놓였던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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