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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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살 작정이든 그저 관심이든, 책만 봤다 하면 냅다 뒤집어 소개문구부터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심심찮게 있다. 내가 그렇다... 집어들자마자 뒤집어본 뒷표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도발적인 지적이었다. 위태롭다! 내지는 재고할 때가 되었다! 는 얌전한(?) 의견이 아닌 무려 끝났다!라는 단언이라니, 관심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
입자물리학 전공에,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소설 출간 경험까지 있는 신선한 이력답게 전반적으로 읽기 쉬운 책이다. 그렇다고 마냥 쉬운 이야기는 아니고, 교양지식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내용은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3부작 정도의 TV 교양 강연 프로그램 이나 대학 교양 강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딱 알맞다. 마침 초반부의 집필 배경에 대한 설명도 오리엔테이션 내지는 강연자 자기 소개와 유사한 내용이니 이런 전개에 익숙하고 또 과학분야 서적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겠다.

"한국형 천재", "과학적 사고"를 논하기에 앞서, 저자는 왜 대중이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지, 왜 과학용어나 과학이 설명하는 내용들에 거리감을 가지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이는 "자연의 기본 원리가 인간의 일상과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의 것이 아니고 자연의 것이다. 그래서 관련 숫자들조차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복잡하다.(p.86)"는 말로 정리된다. 말마따나 "코페르니쿠스 이후로 우리는 우주의 변방으로 일찌감치 밀려난 존재(p.87)"가 아닌가!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거대한 자연과 볼 수 조차 없는 극히 미세한 구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도 낯설고 어려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과학적 태도에 관한 내용에서 특히나 인상깊은 부분이 있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로서의 지식(정보)이라기보다 그 결과에 이른 과정이다.(p.125)" 우리는 흔히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또는 단순한 사건의 순서를 혼동하곤 한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짜뉴스와 황색언론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로는 "선풍기 틀고 자다 질식사" 같은 제목의 해프닝 내지는 낭설이 있겠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누가 말했던가(내가 했다). Covid-19가 대유행한지 2년차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러한 자극적인 보도 태도와 가짜뉴스 유포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하고 또 경계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일까. 물론 그만큼 동요되는 이들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찜찜한 기분에 슬그머니 가짜뉴스를 들여다보게 되는 이들도 그만큼 많아서 문제겠지만.

한국형 천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한국에서 과학에 기대되는 역할과 함께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사회, "헬조선"에서 팀프로젝트를 기피하는 이유도 그것과 거리가 멀지 않다. "좋은 글은 쉬운 글이다" 내지는 "진짜 지식인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는 말은 이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착각이다. 저자는 이렇게 한국의 과학만능주의, 천재만능주의를 지적한다. 마치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만 붙이면 모든 것이 술술 해결되고, 우수한 시험 성적을 거두는 이를 천재로 치켜세워 소수의 천재에 자원을 몰아주면 금세 성과를 내고 부와 성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바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어렵지않게 예견할 수 있는 현대 과학계에서 한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이유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에, 양질의 풍부한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속적으로 규모있게 투자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과학하는 태도란 무엇인가. Nullius In Verba. "어느 것도 쉽게 믿지 마라"는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p.155)" 이는 저자의 말처럼 문명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양 강좌처럼 술술 읽을 수 있어 무겁지 않게 시작해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는 것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더불어 현 시국이나 비교적 최근의 이론이나 사회적인 이슈까지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또한 시의적절하게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책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저자의 이력이나 경험해온 집단이 이유인지, "우리 과학자"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 점은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저자가 예상했던 독자가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일 수도 있겠지만.
끝으로, 신랄한 지적과 본론에 앞서 초반부의 과학지식에 대한 가벼운 몸풀기에서 숨기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전공 관련 분야 나와서 신나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풀어놓는 부분이 꽤 재밌습니다. 브라이언 그린의 저서나 마크 포사이스의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 이 사람 신났구나. 말문 터졌구나. 싶은 부분이 있으니 깨알같은 재미로 찾아보세요.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지는 고찰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출판사 사계절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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