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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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서출판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요리의 비결은 복수, 재료는 남편". 띠지 맨 위에 자리해 보자마자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문장이다. 문자 그대로 완벽하다못해 남편까지 착착 다져넣는, 아내를 위한 통쾌한 레시피일까? 표지의 강렬한 붉은 색에 맞는 "언니 다 죽여!"일까? 적지만은 않은 분량에 집어들기 전까지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펼쳐드는 순간 표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답을 주는 디자인도 없을텐데 왜 이걸 몰랐지?
이야기는 두 인물의 시점과 시간이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1940년대에 지어진, 한적한 동네의 벽돌집의 두 아내, 앨리스와 넬리. 2018년과 195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한숨처럼 풀어놓는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 변함이 없는지, 어쩜 이렇게까지 평행을 달릴 수가 있는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다정하고 든든한 보호자 혹은 평생의 동료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시작된 결혼생활은 한숨이라고 하기엔 비명에 가깝고, 절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억눌려 들리지 않는다.

1955년의 넬리. 잔인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선택한 남편 리처드는 물심양면으로 애정표현을 쏟아붓는 사람이었고, 결혼 후의 그는 잔인하고 또 위선적인 본모습으로 돌아가 조금의 "반항"도 용납하지 않아 뜻대로 하기 위해 폭력과 모욕, 협박을 일삼는 괴물이었다. 자기가 약하게 보일까 남들 앞에서 아픈 것을 걱정하는 아내를 수차례 멍이 들도록 움켜쥐고 폭행하는 그와,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주고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과를, 폭력에도 감사를 말하는 완벽한 아내 넬리.

"고마워요"
넬리는 겨우 말했다. 그는 넬리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없었지만 그는 그걸 원했다. 격렬한 통증 속에서도 넬리는 자기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남편에게 공손한 아내, 자기 탓이 아닌 일로도 사과하는 아내, 자기 삶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남편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아내. 완벽한 아내.(p.67)

2018년의 앨리스. 이 선택이 옳을지 불안했지만 평생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결혼을 결심한 남편 네이트는 다정하고 적극적이지만 결국 앨리스라는 인간의 삶보다 그가 꿈꾸는 완벽한 가족의 삶에 머리를 묻고 꿈을 꾸는 남자다. 선물로, 무려 선물로 임신테스트기를 주는 남자,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철석같은 동의라고 생각해 아내의 생리주기까지 외우는 남자. 이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는 이 작품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을 먼저 읽어야 할 일이다.

화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원에서의 장면을 지나 이야기는 앨리스가 넬리의 집이었던 곳을 소개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앨리스는 도통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원치않게 직장을 떠난 현재로서 대체 여기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할지, 커리어우먼으로서 자기만의 삶이 있고 가사에 능통한 적은 없었던 생활에서 이 한적한 곳의 손 많이 가는 집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만 남편 네이트는 홀딱 빠져 몰아붙인다. 그렇게 불안과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시작된 생활에 적응하려 애쓰던 때, 지하실에서 오래된 요리책을 발견하고, 어머니가 딸에게 가사노하우와 요리책을 물려주던 시절의 책엔 이런저런 메모가 가득하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넬리의 이름을 발견한다. 완벽한 아내, 넬리. 다음 장에서 이어지는 넬리의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이걸 다 견디고 살았을지 놀랍기까지 한 폭력과, 넬리 자신의 삶과 이야기가 뒤엉켜있다. 번갈아 진행되는 두 화자의 이야기 모두 그놈의 남편은 대체 결혼생활을 뭐라고 생각하는건지, 자기 눈앞의 아내가 사람이라는걸 알고는 있는지, 자기가 훼방꾼에 눈치까지 내다버린 짐덩어리라는걸 알고는 있는건지 속이 터져나간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과연 넬리의 완벽한 레시피, 그 종장은 무엇일까?: 넬리의 어머니가 딸에게로 물려준 마법의 요리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안고 따라가다보면 아, 하는 탄식과 함께 한숨, 그리고 모를 수가 없는 고민과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긴장으로 가득차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만일 그 말이 가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저 앞에서 말한 자와 함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책부터 읽고 오는 것이 좋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이제는 무리 없이 동의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말인데 어째서 아직까지도 여성은 완벽한 아내가 되기를 강요받는가? 어째서 넬리의 삶은 그 오랜 시간을 두고 앨리스의 시간에서 그토록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아내로서의 넬리와 앨리스가 아닌, 넬리와 앨리스라는 여성, 사람, 존재.
약하지 않다. 침묵하고 끄덕이고 또 참았을지언정, 연약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이해할 수 있는 삶과 경험에 깊은 슬픔과 또 서러움을 안고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기를 주저하지 않은 넬리의 이야기에 앨리스의 삶과 중첨되는, 합창과도 같은 이야기에 함께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저자의 차기작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보자.

좋은 책을 소개할 기회를 주신 출판사 창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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