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 Belief of Flower
김윤호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피루스, Belief of Flower. 제목을 보고 한참 고민했더랜다. 대체 무슨 뜻일까. 식물, 그 중에서도 꽃을 소재로 한 이야기겠거니 싶어 집어든 이 책으로 인해 기대 이상의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추천사도 홍보문구도 없고 이렇다 할 일러스트도 없어 조금 삭막하게까지 느껴지는 표지에서 쉬이 유추하지 못할 삶, 성장과 용기, 그리고 죽음까지 아우르는 이 소설은 차가운 도시의 벽 틈에 피어난 한줄기 덩굴을 닮았다. 왜 하고많은 것 중에 덩굴이냐 묻는다면 꼬리에 꼬리를 이어져 어지러이 얽혀나가 끝내 새 잎을 틔워내고 또다시 끈질긴 생명을 이어나가는 듯한 이야기, 그래서 삶을 닮은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이라 하겠다.

*"육체는 흙의 것이요, 마음은 자연의 것이라. 네가 죽은 것은 어둠이 아니라 하나의 빛이며 희망이다. 자연의 품에서 행복하길." (p.102)*

작품의 배경은 기후위기로 인한 대재앙과도 같은 시기를 지나, 자연을 인간에게서 배제하고 아예 기록에서까지 지워버리려고 하는 "세계정부"의 지배 하에 있는 미래세계이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 개인은 강대국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전락했고 결국 빈곤은 빈곤으로 이어져 저조한 소비는 자본주의의 파멸을 불러왔다. 극소수의 정상들은 은밀히 "우리처럼 우월한 자들이 영원히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p.55)며 가난한 자들을 제거해 인구를 줄일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가난한 자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동안 배를 불린 것은 강대국이었다. 그렇게 반토막이 난 인구는 "세계정부"의 지배 아래 놓여 자연과 감정을 빼앗겨 삭제당한다. 그렇게 기계와도 같은 세상이 탄생한다.
주인공 에쉬는 어느날 손에서 꽃이 돋아난 소년이다. 이야기는 두려움에서 시작해서 희망으로 끝난다. 전반적으로 분량은 다소 있지만 소설보다는 동화에 가까운 분위기이다. 동화는 쉬운 내용이나 문체라고 깎아내리는 건 아니고,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다음 장에선 어떻게 등장하려나 싶으면 바로 다음 문장에서 죽어나가는 전개이지만 상당히 희망찬 대사와 묘사가 두드러져 콘크리트 벽 내지는 색을 뺏기고 말라 부서지기 직전의 파피루스를 닮은 회색 표지의 삭막한 거절에 이끌려 집어든 어른을 잠자리에 눕혀 토닥여주는 듯한 희한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디까지 내용을 소개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배경 외의 정보 없이 직접 읽어보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각 장의 제목인 꽃 이름과 꽃말이 어떻게 작품을 구성하는지, 몸에서 꽃이 돋아난다는 꿈같은 설정이 독자를 어디로 이끄는지는 갈라진 벽 틈에 돋아난 작은 풀포기에 홀린 이에게 숨겨진 들판같은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찬바람이 불면 곧 겨울이 다가오고 숨죽인 생명은 봄을 기다릴 때에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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