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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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불친절한 글이다. 따로 설명이 없다면 한참을 어리둥절하고 나서야 이 말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현실과 환상(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자라면 환각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지겠지만.)을 뒤섞고 흔들어 독자로 하여금 결말에 허덕이며 나아가게 한다. 바로 그 지점이 매력이기도 하다.
글의 대부분은 아만다와 다비드 둘의 집단적 독백에 가까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쉽사리 연결지을 수 없는 정보들을 끌어안고, 달콤한 자외선차단제 냄새가 풍기는, 뜨겁고 어지러운 낯선 곳에서 비틀거리며 달려가다보면 어느새 진창에 빠져 서서히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짧은 분량에 감히 마르케스를 떠올리며 코웃음쳤던 내가 경솔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어리둥절함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채근하고 울먹이는 나만이 남는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지만 서서히 조여오는 압박감, 절박함, 혼란스러운, 썩어가고 오염된 무언가, 숨을 쉴 수 없는 혼몽함에 열병처럼 중얼거리는 경험을 원하는, 일그러지고 산란하는 경계를 사랑하는 이에게 추천한다.

*출판사 창비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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