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 -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Philos 시리즈 24
데니스 덩컨 지음, 배동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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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저는 책을 읽을 때 가끔 붙이는 스티커 인덱스가 떠올랐고,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라는 문안을 보고서야 아! 찾아보기! 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든 생각은 "색인에 대해서 할 말이 이렇게도 많은가?"였는데, 이 책은 장장 488쪽의 볼륨을 자랑합니다. 저자 덩킨을 따라 고대의 석판에서부터 구글 검색창까지 이르다 보면 생각보다 방대한 색인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가 가진 문제점들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덱스》는 사실 표지가 귀여운데, 보통 3단으로 색인을 구성하기 때문에 삼단의 밑줄이 있고, 한 쪽 방향을 가리키는 손이 하나 있습니다. 옆에 두면 당장이라도 옆의 책장을 열라는 압박으로도 느껴지는데요, 일단 표지 은색 홀로그램 박이 눈길을 끌어 잡습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책에서 색인을 눈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제 색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원고 안에서 이해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고,  주제 색인에 대한 비판점을 읽으면서 계속 용어 색인의 개념으로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서 아닌 한국어로 쓰인 책에서 색인을 자주 찾아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안 찾아본 것일수도……)




초반에 용어 개념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용어 색인은 "빈틈 없이 원문에 충성스러운 색인"(26쪽)을 말하고


주제 색인은 "원문과 원문을 읽으려는 독자 사이에서 그 충성도를 적절히 배분하는 색인"(같은 쪽)입니다.



예시가 없으면 색인을 F3 찾기 기능과 같이 사용하는 저로서는, 주제 색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저자도 이 사실을 잘 알았는지 바로 뒤에 "극단적인 주제 색인"(35쪽)의 예시를 들어줍니다. 



'원고 작성자인 프리먼 교수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색인 작성자 라운드가 쓴 '프리먼 교수' 항목의 주제 색인'입니다.


프리먼 교수: 케임브리지 카운티의 토지심사과정(Inq. Com. Cant.)에 대해서 모르다 4쪽; 노샘프턴셔주 지세 명무 무시하다 149쪽; 지세 심사 과정 혼동하다 149쪽; 프리먼이 가한 경멸에 찬 비판 150, 337, 385, 434, 454쪽; 정작 프리먼 자신이 오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51쪽; (《인덱스》, 33쪽)



용어 색인은 F3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 주제 색인은 이와 전혀 달리 색인 작성자가 원고를 읽고 그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쓴 요약이 첨부된다는 점, 그것으로 색인에 작성자의 개성이 돋보인다는 점을 가장 큰 차이로 생각하고 이 책을 시작하면 좋습니다. 이걸 전제로 하고 가야 이후에 색인에 대한 비판 지점을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책에 이런 악의적인 색인이 첨부된다고 생각하면, 


남일이니까 재밌지, 내 책이라면? 하는 상상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는 이후 5장의 주제로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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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는 총 9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대략 시간 순서에 기반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풀어가는 책은 아닙니다.  ('옮긴이의 말'에서 시간 흐름에 맞춰 색인 역사를 간략히 요약해두니 헷갈린다면 그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각 장의 주제가 확실해서, 꼭 선형적인 흐름일 필요는 없다고 느껴지긴 합니다.)



1장 서열화의 취지 : 알파벳순 배열에서는 "만약 색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신기하고도 불가사의한 알파벳 자모순 배열 방식의 의미를 진정 알고 싶다면 우리는 선사시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43쪽)는 저자의 무시무시한 발언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색인을 떠올렸을 때 누구나 ㄱㄴㄷ순으로 배열된 단어의 목록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중세는 알파벳순 배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47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ㄱ 혹은 a로 시작하는 단어가 앞에 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이러한 배열은 "이미 배열되어 있는 것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시하고 내용보다는 형태에, 의미보다는 철자에 초점을 맞추어 완전히 임의적인 우연에 내맡기는 것"(52쪽)입니다. 



현대인에게 너무 익숙하고 효율적으로 여겨지는 정렬이 사실은 우연과 임의성을 기반으로 한 탈맥락화된 무의미한 배열이라는 시각이 상당히 새로웠습니다 



특히 이러한 배열(답관체, 애너그렘 등등의 언어 제약적 글쓰기 방식)을 낮잡아 보는 시각이 이따금 존재했다고도 합니다. 



2장 색인의 탄생 : 설교와 교육은 13세기 이미 코텍스와 알파벳이 상용화된 시기를 설명합니다. 이 시기는 대학교육기관이 신설되며 "강의와 설교의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86쪽)을 맞이하여, "새롭고 효율적인 -책을 이용하는-독서법에 대한 요구가 증가"(87쪽)합니다. 



이때 그들이 사용하는 책은 성경이었고, 그로스테스트는 성경에 대한 주제 색인 작성을 시도합니다. "개념에 대한 색인이므로, 필요하다면 동의어가 쓰일 여지도 충분"(87쪽)한 것입니다. 



저자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예시를 들며, 이 에피소드(?)를 용어 색인이라면 "단지 분석 대상인 텍스트에 등장하는 단어"(88쪽)으로 파악하며 '노아의 방주'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색인을 작성하겠지만, 주제 색인이라면 이는 "용서, 분노 혹은 홍수에 관한 것"(88쪽)에 대한 항목에 '노아의 방주'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용어 색인-주제 색인의 대표주자는 셍셰르의 휴와 그로스테스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색인 작성의 목표는 '풍부한 인용으로 비로소 만들어지는 멋진 설교와 강의'입니다. 



2장에서 재밌는 개념은 '디스팅티오'였는데 이는 "기억을 돕는 상기물"(106쪽)이며  설교에서 옆길로 새지 않고 "내용의 정연함과 해박함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설교자가 즉석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할 제공(109쪽)합니다. 이러한 디스팅티오를 개별적으로 작성하여 사용했다는 지점도 흥미롭지만, 이제 이 '디스팅티오'가 당시의 독서법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부분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디스팅티오는 독서에 관해 더 많은 어떤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 준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책들도 또한 발췌된 형태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평생을 끈기 있게 성경을 파고들면서 읽고 또 읽고 하던 수도원식 읽기의 의도적인 단조로움과는 도무지 다른 차원에서 생겨난, 각각의 디스팅티오는 그것의 사용자들로 하여금 근거가 되는 자료를 찾아 일련의 탐색-시편의 한 구절 또는 복음서 중 어떤 비유 또는 창세기의 한 순간 등등-을 하도록 만든다. (《인덱스》, 109쪽) 



자 이제 색인에 대한 비판점이 어떤 형식으로 제시될지 조금은 감이 오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무언가 익숙합니다. 어떠한 책을 읽지 않고, 누군가가 길게 작성한 요약 및 서평을 읽었다면, 과연 그것을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비슷한 결을 공유하는 듯합니다. 


이어 3장 그것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쪽 번호가 만든 기적에서는, 쪽 번호 등장 이전의 색인의 위치 표시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중세의 색인 작성자들은 (...) 검색하기에도 좋고 작가나 편집자가 미리 책을 분할했거나 말았거나 상관없이 기능할 수 있는 것"(142-143쪽)을 찾아 나서는데, 장이나 문장의 첫 부분을 적어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사자들이 베껴 쓰는 동안 쪽 번호까지 동일하게 베껴 쓰지 못한 까닭에 필사본의 경우 엉터리 색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이 동일한 형태로 대량생산되고 나서야, 필사본에 따라 단어가 수록된 쪽수가 달라지지 않게 되자 드디어 색인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색인은 "수고를 통해 부가가치를 보탠 것"(162쪽)라는 마케팅적 가치까지 얻습니다. ㅋㅋㅋㅋ



4장 지도냐 실제 영토냐 : 시험대에 오른 색인에서는 위에 은근히 등장했던 당시 색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대하여 다룹니다. 


말하자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책 속에서 어떤 것을 검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의 상대적인 차이와 그런 두 가지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성이 보여주는 부조화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읽기도 전에 색인을 들춰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정말 그런가? (《인덱스》, 182쪽)



현재는 색인이 원고의 맨 뒤에 수록되는 것과는 달리 예전에 색인은 책의 앞쪽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색인은 "상기를 위한 것인가 시식을 위한 것인가."(197쪽) 그리고 어떻게 색인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과 8장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색인을 책의 앞부분에 실었다고 합니다. 게스너는 "지나치게 색인에 의존하는 (...) 그리고 책 저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철저하게 텍스트 전체를 읽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170, 게스너 재인용)이 "(...) 책이 오용되면서 그것의 가치와 유용성이 불가피하게 훼손되고 쪼그라"(171, 게스너 재인용)들게 되지 않을까 하며 게으르게 색인을 이용하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여기서 색인은 "우리가 이미 숙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억을 돕는 상기물(aidememoire)이라기보다는 책 속으로 진입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사용될 가능성"(194쪽)이라고 이야기하며, 이 색인을 먼저 찾아보는 행위를 우리가 구글에 책을 검색해 보는 행위와 등치시킵니다. 그러므로 색인을 먼저 보는 것은 "시식"이며 좋거나 나쁜 방식이라기 보다 색인을 사용하는 새로운 독서 방식이 됩니다.


이러한 종류의 비판의 시작점을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력을 녹슬게 하고 우리의 주목하는 힘을 무력화하여 망각 증세를 일으킨다고 비판"(206쪽)하며 "문자는 구체화하지 못한 지식의 전시물"(같은 쪽)이라며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결국 이런 새로운 도구를 이용할 때 드는 두려움은 인간 보편의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말은 오히려 가벼운 것이고, 글이 깊게 남을 만큼 밀도 높은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결국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요즘 와서야 조금씩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색인만 찾아보는 '몰지각한 사람'들에 아마도 책들을 발췌독 하는 내가 포함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요즘 고민이 참 많은데, 다시금 고민에 무게를 얹어주는 게스너의 글입니다.



5장 “토리당 녀석에게는 절대 내 『영국사』 색인을 맡기지 마오!” : 색인을 둘러싼 논쟁은 색인이 이렇게까지 활용될 수 있구나,라는 다른 의미의 감탄을 이끌어내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이 서로의 저작에, 서로를 비난하며 풍자하는 색인을 달아 이른바 색인 전투를 벌입니다. 



6장 소설에 색인 달기 : 작명은 늘 그렇듯 어려운 기술이다에서는 소설에 색인을 다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7장 모든 지식으로 향하는 열쇠 : 보편 색인에서는 모든 영역에 대한 색인, "모든 지식에 대한 포괄적인 해답"(329쪽)을 만들고자 한 색인 협회와 실제로 정기간행물의 주제와 목록을 정리하여 발간한 어느 가난한 사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알파벳순으로 분류해 놓기만 하면 가치 있는 자료가 됩니다. 보편 색인이 목표로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배열할 수 있고, 쓸모없었을 많은 것들이 그 순간 안식처를 구하게 도비니다. 영원히 증식하면서도 결코 완성되지는 못할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색인은 모두에게 유용할 것입니다"(334, 휘틀리 재인용)라고 색인 협회장 휘틀리는 말합니다.



영원히 증식하면서도 결코 완성되지는 못할 운명, 보편 색인, 뭔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빅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완성'이라는 목표 없이 끊임없이 증식만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8장 루드밀라와 로타리아 : 검색 시대의 책 색인에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대하여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쓰기는 부주의함과 '참된 지혜가 아니라 지혜처럼 보이는 것'을 부를 뿐이라며 던진 경고와도 궤를 같이한다."(354-355쪽)이라고 말합니다. 



기계식 읽기[로타리아가 컴퓨터 프로그램에 소설을 넣으면 사용빈도 순대로 일련의 단어 목록이 산출되며, 로타리아는 이 목록을 보는 것이 독서라고 한다] 방식을 독서라고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저자는 "기계-혹은 알파벳순 단어 목록-가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독서 경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354쪽)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단어를 검색하면 검색 엔진의 수많은 색인 목록에서 읽어 드려 배열하여 결과물을 내보이는 시대에서 색인은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요?



여기서 저자는 트위터(현 X)의 해시태그(#)에 대하여 말합니다. 해시태그는 "즉석에서 마련된(ad hoc) 언어적 이정표"(386쪽)로 "태그를 다는 사람은 (...) 생각을 정리하고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개념을 다변하는 최선의 표제어를 선택"(388쪽) 한다는 점에서 색인 작성자를 닮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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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부터 해시태그까지 이어지는 색인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문자와 코덱스 형식으로 제본된 현대 책의 형태, 물성, 그리고 독서 행위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제가 발췌독을 하면서, 글에 여러 저작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출간된 책의 색인을 잘 활용(게스너의 말에 따르면 '상기') 하는데, 항상 책을 제대로 읽은 건지, 내가 일부를 오독하고 인용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 주요 주제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의문점을 다시 상기시키게 하는 지점이 꽤 많았습니다.


색인만 읽고 책을 읽었다고 하는 이들은, 왕궁의 화장실만 가보고 왕궁 전체를 설명해 주겠다고 나서는 꼴이라는 문장을 읽고, 아 이것은 나에게 하는 말일까…



예전의 지식인들이 색인에 대해서 말했다면, 최근에는 '요약본'에 대해서 비슷한 논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글을 읽었을 때, 우리는 책은 아예 읽지 않은 것보다는 더 많이 알고, 그렇다고 책을 읽은 것에 비해서는 모르는 이 애매한 상태. 



그러나 이 상태 자체를 고정적인 '결말'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식'을 통해서 실제 책을 접할 동기를 얻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맞지도 틀리지도 않다고 답변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주제가 새로웠고,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글쓰기에 조금 익숙해지는 감이 들어서 더 쉽게 읽히는 책이라


조금 두께가 있긴 하지만 다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관심있으시면 한 번 시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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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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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부수는 해러웨이,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오늘의 책은 도나 J.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입니다. 


이 책은 해러웨이의 1978년에서 1989년까지 쓴 논문 10편을 모은 책입니다. 해러웨이의 가장 유명한 글인 <사이보그 선언문> 또한 이 책의 3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은유로 사용합니다. 특히 해러웨이가 집중하는 부분은 '경계'인데, 기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위계 관계를 해체하자는 주장이 주를 이룹니다. 


1부에 수록된 논문은 "원숭이와 유인원을 연구하는 과학에 내포된 생명정치적 서사에 주목"(11쪽)하고 있습니다. 이때 기존의 생물학, 동물사회학의 이론을 살피고 이때의 과학이 

어떻게 부계를 계승하며 이 과학 연구들과 당시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서사를 통하여 남성 중심적인 생물학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해러웨이는 여성들의 '이종어(heteroglossia)'에 대하여 말하는데, 


"인간에게 언어는 실재를 생성하는 데 주요한 기능"을 하며 "권력의 맥락 속에서 실재를 생성"(142쪽)한다고 말합니다. 이름짓기는 언제나 권력의 특권이었기에, 이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름짓기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렇다면 세상을 전혀 인식할 수 없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4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생물학 이론의 창세기'가 재밌었는데, 이 논문의 도입부에 해러웨이 특유의 여러 학문을 꿰뚫어 사회주의 페미니즘적 입장을 주창하는 논리구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길버트와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밀턴의 딸들'(에밀리 브론테와 메리 셸리)을 가져와서 '밀턴의 과학적 딸들, 밀턴의 페미니스트 딸들'이라고 풍자해서 쓰는데, 유쾌함에 웃음이 났습니다. 


"발화의 조건(terms of speech)을 설정하고자 경합하는 수사학적인 전략은 자연과학 분야의 페미니스트 투쟁의 핵심이다"(130쪽)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에게 받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의 시작은 이 언어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점, 솔직히 여성주의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처지에서 깊이 공감했씁니다. 


3부에서는 '타자'의 존재를 정의하고 그들을 재현하려는 논문들이 실려 있습니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328쪽)는, 해러웨이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문장으로 끝나는 <사이보그 선언문>이 이 3부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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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를 읽기 전과 후의 글쓰기에 스스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러웨이가 끊임없이 말한 '사이보그, 키메라가 사용하는 이종어'라는 개념으로 왜 내가 사회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사용할 언어가 없는지를 이해했고, 저는 이제 해러웨이의 단어와 문장, 논리를 인용하지 않고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분법의 경계를 사이보그라는 은유로 해체하고, 그 개념을 '느슨한 그물망'으로 엮어내 타자의 존재를 포용하는 하나의 단어로 만들었다는 점과, 이런 이론의 기반이 해러웨이가 가진 생물학, 영장류학과 같은 언제나 남성중심적이던 생물학계(특히 진화 이론에 있어서 남성 중심 시각이 주류라고 생각하는데)의 사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벼락 맞은 것처럼 눈을 뜨게 해줍니다. 특히 일원론적 합일이 아닌, 해체 자체를 긍정하는 시각도 제게는 큰 새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질적인 이종어의 집합으로서의 사회. 상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해러웨이가 새로운 사이보그의 신화로 제시하는 페미니즘 SF들도, 계보와 신화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꼈던 저한테 정말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열쇠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해러웨이가 많이 인용한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를 읽고 있습니다. (솔직히 러스, 《여성인간》 번역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3년의 세상은 SF 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이보그로서의 내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러웨이가 필수적이지 않을까, 이미 모두가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현재에 계보 없는 이종어를 사용하는 사이보그이자 키메라이자 잡종이자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다! 해러웨이다! 라고! 주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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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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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N의 서재로 가져온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번역서가 출간되는 (미국 문화계에서 저명한) 작가 가이 대븐포트가 쓰고 박상미 번역가가 옮긴 《스틸라이프》입니다.

"이 책은 예술과 문학에 나타난 정물 전반에 대해 다루는데, 정물이라는 소재가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가장 넓게 탐색한다."(12쪽)라는 박상미 번역가의 말에 따라, 《스틸라이프》는 정물에 대하여 전방위적 예술 분야를 다루는 에세이입니다. 것도 가벼운 에세이가 아닌 저자의 가늠할 수 없는 지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에세이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인상주의 화가, 중세 시대의 지리학자까지 여러 인물과 그들의 저작들을 이용하여 저자가 집중하는 '정물'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 정물에 대한 책이라는 말만 듣고 사실 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 책을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천으로 싸바리 된 양장본이지만 판형이 작고, 200쪽 내외 얇은 볼륨을 자랑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쉽게 읽히느냐? 책의 볼륨과 텍스트의 무게는 절대 비례하지 않습니다. 한병철 책 이후로 항상 느낍니다.

《스틸라이프》는 다음과 같이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여름 과일 광주리

2. 운명의 두상

3. 사과와 배

4.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


1장 '여름 과일 광주리' 하면 보통 우리가 정물화하면 처음 생각나는 오브제이기도 할 텐데요. 대븐포트는 1장에서 정물의 기원과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정물still life'라는 이름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대상"(25쪽)으로 "음식을 구하고 음식을 먹기까지의 시간",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같은 쪽)을 2차원의 캔버스에 재현한 그림이 정물화라고 이해했습니다.

조리가 되지 않은 달걀, 바로 먹어도 되는 사과, 포도, 막 잡아온 물고기, 와인과 같이 식사 재료에서부터 재료를 가공한 식품이 우리의 식탁에 놓이고 '식사'라는 문명인으로서 의례를 거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물화의 시발점을 대븐포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집트의 시발점은 무덤 벽화의 음식 그림이며, 이스라엘의 시발점은 선지자 아모스가 하나님에게 받은 계시 중 등장하는 '여름 과일 광주리'입니다. 이때 우리가 상상하는 여름 과일로 가득 찬 광주리로 풍요가 아닌 종말을 예고합니다. 계절이 돌아오면 풍성해지는 여름 과일 광주리는 언젠가 비워지며 동시에 언젠가는 다시 채워진다는 풍요와 종말의 의미를 동시에 띄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걸 이제 현실의 사물이 캔버스에 정물로 재현되며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 새로운 구조(체계가 더 맞는 표현일까요)가 생성되었다,라는 게 정물화의 기원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사물을 재현한 회화에 고대인들이 제의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하나의 정물에 역설된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재현 혹은 기록을 넘어선 예술의 분야로 넘어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사실 1장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과 휴 밀러라는 지리학자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식사'라는 행위를 "야생에서 문명으로, 자연에서 문화로"(37-38쪽)의 이행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정물화는 문명이라는 기표를 보여주는 예술이란 이야기라고 이해했습니다.

모네의 <점심 식사>에서 포도와 와인, 어머니와 아들, 반짇고리와 옷과 같이 정물화 내부에 "파생의 관계"를 설정하였다는 해석이 정말 새로웠습니다. 예술작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저는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지리학자 휴 밀러가 배를 타고 선교를 위한 항해를 할 때, 밀러가 묘사한 선실의 오브제들로 당시 선박을 탄 선원들의 생각과 밀러가 강조하고자 하는 의미를 읽어내는 저자의 통찰에 일단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홀다인의 그림에서처럼, 책과 지도와 과학 기구 들이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헨리의 주석 성경과 칼뱅의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s』가 항해 지도와 망원경과 함께 놓인 것은 분명 밀러가 상징적으로 의도한 것이다.

(중략)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혼의 순례의 상징물과 거친 바다에서 섬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여행자들을 연결시키고 싶었다면, 뒤러라도 상징물들을 그런 식으로 배열했을 것이다."

55쪽

이렇게 정물화를 너머 선 소설 속 묘사된 오브제의 배열을 정물로 인식하며 대븐포트는 오브제를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이 시선을 구조주의 비평으로 바라보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이 책을 아주 후하게 생각해도 20프로 정도 이해한 것 같습니다.)

대븐포트는 회화, 사진과 같은 이미지 중심 예술뿐 아니라 시나 소설같이 텍스트 중심의 예술같이 전혀 다른 매체를 이용한 예술작품의 오브제/소재/정물(사실 이 세 단어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뜻으로 쓰는 건지, 써도 되는지, 혹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제가 오용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같이 해석하는데, 이를 번역가는 "콜라주적 에세이"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도 비누 이야기가 나오면 비누의 기원부터 고대, 중세 시대의 위생관념의 역사까지 술술 읊으며 수다(의 수준이 아니지만)를 떨다가 수업으로 돌아갔다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그저 압도당할 뿐입니다.


2장 '운명의 두상'에서는 도입으로 '셜록 홈즈'라는 도시 설화folklore를 이야기합니다. "텍스트에서 빠르게 분산(또는 확산)되어 다른 작가들도 이를 차용"(63쪽)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텍스트를 벗어나 "대중의 상상 속에 위치"(같은 쪽)하는 존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도입에서는 셜록 홈즈가 '아서 도일의 소설 속 주인공'에서 벗어났다, 텍스트 밖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서 도일의 소설은 '원천'이나 캐해를 위한 "고전적인 레퍼런스"가 됩니다. ㅋㅋㅋㅋ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베이커 가 221번지 B호의 인테리어가 주는 이미지는 아마 비슷할 것입니다. 셜록 홈즈의 집이라고 했을 때 그 집을 구성하는 오브제들은 '과학 실험 도구가 놓인 탁자, 바이올린, 범죄 기사가 실린 스크랩북, 파이프' 그리고 2장의 주제가 되는 '홈즈 자신의 흉상'입니다.

대븐포트는 탁자에 놓인 흉상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를 셜록 홈즈에서부터 "피카소와 브라크의 전형적인 큐비즘 정물화의 구성"(65쪽)에서 "중세 전통의 성 제롬의 서재"(같은 쪽)까지도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때부터 진짜 무서워졌습니다. 어디까지 가겠다는 것입니까.

사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부서졌다'라는 특성입니다. "지난 백 년 동안 고대 미술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산산조각 부서진 모습"(67쪽)이었으며 "부서진 파편은 바로 과거라는 조건 자체"(같은 쪽)입니다. 고대의 토르소는 얼굴, 팔, 다리가 없는 몸통뿐입니다.

여기서는 '너무 흔해진 흉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너무 흔한 '나폴레옹 흉상'은 상징성이 고갈되며 의례의 장소에서 신성함을 주던 예술품에서 집안의 장식품으로 흉상을 부순 범인의 편집증적 성향을 나타내는 소설적 장치로 사용됩니다.

벤야민은 이에 대하여 "실내(그러니까 가구를 들여놓은 실내)는 우주일 뿐 아니라 사적인 개인이라는 사건이다.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라며 탐정 소설이 19세기 실내의 산물"(72쪽)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설 속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 인물이 거주하는 실내의 사물을 하나하나 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 2장에서는 에드거 엘런 포의 '몸이 없는 머리만 있는' 상태의 인물, 이어 참수당한 신화에서 몸과 머리를 드디어 동시에 갖춘 사람 레오포드 블룸(제임스 조이의 1922년 소설 『율리시스Ulysses』의 주인공)을 만들어냅니다.

참수의 신화를 "세례 요한의 컬트"(102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척 신랄합니다.

"두상이 인류의 운명의 상징으로 출현한 것은 동물의 형상을 통해서"(103쪽)였는데, 이는 능력이 극대화되기를 원하는 신체 부위를 동물의 형태로 변환하는 것(머리가 새의 형상이라던가)으로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메멘토 모리를 떠오르게 하는 몸 없는 잘린 머리는 우리의 전통이며, 이 "정물이 지속되는 한, 두상이 우리의 운명"(107쪽)이라고 말합니다.


3장 '사과와 배'는 언제나 짝으로 등장하는 이 두 정물의 의미 즉, 사과는 추락fall이며 배는 구원redemption의 상징으로 활용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경에서 라틴어로 사과와 선악과의 스펠링이 유사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게 의미가 굳어진 정물은 세잔의 작품에 와서 에로스, 사랑, 평온함, 따스함의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되었으며, 오히려 배는 정치인의 풍자화에 유사한 형태가 활용되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프랑스어 속어에서 "배poire는 잘 속는 얼간이나 멍청한 사람을 뜻한다"고(138쪽) 합니다.

3장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사과-배의 대립되는 도식, 정반대되는 의미를 얻은 기표이기도 하지만 사실 '양파'입니다.

'반 고흐의 정물과 상징' 꼭지에서 고흐의 <양파가 있는 정물>(1889)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양파라는 기표에 대한 해석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고흐는 정물화를 "일종의 시각적 일기"(153쪽)으로 사용했는데, <양파가 있는 정물>은 "질병과 건강의 기록"(같은 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대븐포트는 정물로 캔버스에 재현된 양파를 읽어내는 방법을 독자에게 묻습니다. "[양파가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기 때문에] 그 그림을 식단을 더 잘하겠다는 약속으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더 심오한 전환으로 읽을 것인가?"(155쪽)

"양파와 담배에는 날것부터 익힌 것까지라는 레비스트로스의 코드가 있"고 "담배와 배는 수확 후 익으며, 둘 다 부드럽게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양파는 음식인 동시에 조미료이며, 이 그림에서는 약으로 기능"(같은 쪽) 한다고 합니다.

대븐포트는 사과-배 도식을 이용하여 양파의 어원이 결합union이라는 것에서 양파를 "구원의 의미를 가진 배의 유사체이자 사과와 배가 결합된 존재로서, 그림 속 모든 것을 하나의 복합적인 상징으로 엮은 역할"(157쪽)이라고 해석해 내고 맙니다.


4장 '토리노의 형이상학적 빛'은 니체와 데 키리코에 대한 장입니다.

니체는 토리노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며, 이곳에서 영원 회귀라는 주요 사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되풀이되는 운명'은 "키리코의 회화 작업의 영감"(166쪽)이 되었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키리코의 작품을 발견하고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사실 아주 익숙한 정물들은 새로운 구도와 배경에 배치하며 이성을 넘어선 무의식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한 사조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에니그마(수수께끼)를 일으키게 하는 세계를 의도적으로 구성하여 '낯설게 하기'를 전개한다는 지점에서 저는 다시금 SF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큰 관련은 없어 보입니다. 일단을 서사를 표현하는 기법과 사물을 재구성하며 재현하는 이미지 매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은 같은데,

"진실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은 대상을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에니그마처럼 보는 것"(171쪽)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4장 후반부에 레비스트로스의 식사와 관련한 해석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눈여겨 읽었습니다.

종교적 세계관 속의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신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대가로 규칙성(이때 규칙성이란 낮과 밤, 달과 년, 수명, 임신과 월경 기간과 같은 주기성입니다) 을 얻게 되는데 레비스트로스는 이 시초를 식사로 봅니다.

음식을 하기 위하여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요리를 하고, 식탁에 차리고, 정해진 식기를 통해서 약속된 시간에 초대된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이 규칙성을 기록하는 것이 정물화다!


제가 《스틸라이프》를 읽으면서 집중했던 부분은 정물/정물화가 가지고 있는 역설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변화하는 부동(不動) 움직이는 정물"로 정해보았습니다.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인 정물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역사 속에서 인간, 사회, 문명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동시에 정물은 깨지고 재구성되고, 수확되고 썩어가며 계속해서 자신의 속성을 바꿉니다.

하지만 중세의 정물화나 현대의 정물화나 다른 회화 기법이나 사조마다 작품 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반면, 정물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욱이 우리는 정물을 변화하지 않는 것, 그대로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대븐포트는 4장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샤르댕의 조화로움에서 세잔으로, 세잔에서 브라크와 피카소로, 그리고 그들에서 데 키리코의 기하학적 에니그마로 이동하듯, 아모스의 비전은 여름 과일 광주리에서 신이 다림줄로 벽을 만드는 비전으로 이동한다. 정물화는 이런 비전들 중 둘 중 하나의 상징일 듯하다. 하나는 가을의 수확을 꿈꾸고, 우리가 거기까지 관리해 가는 과정과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는 기반에 따른 건축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한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210쪽

그러므로 정물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정물에 대한 변화 가능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좇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러나 미학 비평에 대한 배경지식이 쌓이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번에 읽을 때는,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기대되는 마음을 품고,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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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
조지 오웰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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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지 오웰의 《1984》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군가 좋아하는 소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항상 답하던 소설 중 하나였다.

다시 들춰본 지는 오래되었으나, 이 책이 지닌 철학, 디스토피아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근간은 항상 되새김질하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역시 책을 다시 정독하는 일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번 문예출판사에서 새로 번역판을 출간한다는 소식에 급히 서평단을 신청했고, 20대 초반 한창 좋아하던 이 소설은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한 약 5년의 기간이 《버마 시절》으로 이어져 이후 그의 정치적 함의가 가득한 글쓰기를 시작하게 한다.

이번 문예출판사의 《1984》에는 서문으로 <1944년 노엘 윌멧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오웰이 장편소설로써 드러내려 했던 파시즘화에 대한 두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2 더하기 2는 5다.

이 명제는 사상범으로 사랑부에 잡혀 간 윈스턴은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다. 진실은, 사실은 2 더하기 2는 4이지 5가 될 수 없다.

오웰은 이러한 객관적인 명제가 전체주의의 압박 속에 어떻게 무너지는지, 진실을 좇는 이는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자체를 바꿔버리는 권력의 억압을 암시하며 반복적으로 경고한다.

서문의 편지글에서부터 소설 후반부까지 반복하여 등장하는 "2 + 2 =5"라는 명제를 윈스턴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은 지극히 폭력적이다. 그를 꽉 묶은 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하고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고는 반복해서 묻는다.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어린아이가 보아도 지적할 수 있을만한 커다란 논리 구멍은 절대적으로 옳은 위치의 빅브라더, 즉 당의 입장은 온몸의 척추가 끊길 것만 같은 고통 아래 점차 없었던 것이 되어간다.

이는 신어로 '이중사고'라고 일컬어진다. 빅브라더의 연설에 맞게 과거를 고치는 일을 하는 윈스턴이 속해있는 진실부. 이 외부 당원들은 일하는 내내 당의 거짓을 목격하지만 모두 잊고는 당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상반되는 두 가지 진실을 동시에 믿는 것, 그리고 아주 의식적으로 각각의 진실을 필요한 순간만 꺼내 다시 무의식 속으로 집어넣는 것.

전쟁은 평화, 무지는 힘, 자유는 예속.

윈스턴의 동료는 신어를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 좋다의 반대말을 '안좋다'로, 강조는 '플러스안좋다' 더욱더 강조하려면 '이중플러스안좋다'.

신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자유'라는 단어를 알지 못해 애초에 반역 자체가 불가할 것이라는 상상. 유일하게 단어의 수를 줄이는 편찬 과정을 겪는 신어는 언어로 인간의 사고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오브라이언의 "우리가 모든 기억을 통제합니다"(p.328)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밖으로 보이는 행동이 아닌 생각을, 상상을, 의식을 넘어선 무의식을 우리도 모르는 새에 통제당할까 두려워한 오웰이 지금의 시대를 보면 무어라 말할까?

전체주의 독재체제 대신, 치솟는 능력주의를 삼킨 신자유주의가 마치 인간은 인간이 아닌 하나의 물질, 상품화하는 시대를.

스탈린 체제하처럼 밤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아닌, SNS에서 끌려와 모든 사람들에게 신상이 공개되고 악플과 사이버불링에 시달리며 결국 목숨을 끊게 되는 사람들을.

투표권이 박탈당해 스스로 지도자를 뽑지 못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차별과 혐오를 가중시키는 지도자를 선택하고 '자신을 차별하는 정치인'의 지지자임을 선언하는 모습.

그가 그린 《1984》의 모습과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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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옥성아.채한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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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라는 책을 가져왔습니다. 알라딘에서 경제경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에세이에 더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표지에 '취향의 시대가 선택한 콘텐츠 성공의 비밀'이라는 문구도 보고,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 하고 읽었는데,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제작자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엮어 쓴 부분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더 에세이 같고,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6개의 큰 목차로 구성되어 있고, 이 목차에서 저자들이 <고막 메이트>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어떤 철학을 중점으로 잡았는지 키워드를 뽑아 설명을 합니다.

"진정성, 관계성, 공감, 협동"이라는 네 가지 제작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콘텐츠 <고막 메이트>는 "시청자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위로와 공감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빛이나'는 콘텐츠로 성장"(p.203)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막 메이트>는 SBS 디지털 미디어 스튜디오 '모비딕'과 KT의 OTT 서비스 'seezn'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동 작업으로 제작되어 유튜브와 seezn에 스트리밍 되고 있는 디지털 웹 예능입니다. '뮤직 토크쇼'라는 형식으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네 명의 MC와 게스트가 위로와 공감을 건네고, 그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는 새로운 형식의 예능인데, 이 책을 읽고 찾아보니까 캡처 본으로 SNS에서 유명했던 짤의 출처가 <고막 메이트>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옥 피디님이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엄청 눈에 들어왔어요. 요즘, 검경 수사권 때문에 살짝 이슈에서는 벗어났지만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이슈가 떠오르는 현실을 떠오르게도 해줬고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하교 하던 한예종 동기와,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를 떠올린 그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다큐를 만들기로 하고 휠체어를 타고 신이문역 종각역까지 가기로 합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내가 피디가 된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진하게 와닿았던 글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유튜브나 디지털 플랫폼에서 성공 요인을 떠올리라고 하면, 일단 '자극적'이며 '흥미 위주'의 '짧은' 콘텐츠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나 현재는 고자극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에 대한 피로도가 상승하고 있을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인스타, 페이스북 같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소식을 듣는 사진 기반 SNS에서 네이버 블로그 같은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글자 기반 SN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틈을 잘 겨냥한 콘텐츠인가? 했는데, 제작 전부터 콘텐츠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게 정해진 채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꽤 놀라웠어요.

그리고 첫 번째 챕터에서 올레 5G를 광고하기 위한 콘텐츠로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콘텐츠 기획은 아예 들어 엎고 나서야 <고막 메이트>를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할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제작자가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 저는 사실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잊히기 쉬운 문제더라고요. 가장 근본적이기 때문인가 봐요.

이 책에서도 기획 단계에서 아주 세부적으로 특정 지은 가상의 소비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웹 예능 <고막 메이트>의 가상의 시청자는 "입사 3년 차 27세 직장인 여성"(p.55)입니다.

출판 기획에 관한 강의를 들었을 때, 편집자 선생님들도 항상 기획 단계에서 아주 구체적인 타깃층을 정하고 한 명의 가상 인물을 창조해서 그 인물의 취향에 맞게 만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인물이 기획 의도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게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책으로 교차 검증된 이야기라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여 봅니다.

저자들이 <고막 메이트>라는 프로그램으로 쟁취하고자 하는 가치가 구체적으로 존재했기에, 이들은 자극의 대명사인 '연애, 섹스, 술'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읽었을 때, 저는 사실 어느 정도 이러한 소재를 제외하는 것도 가치를 관통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어 SNS에서 한참 '섹스로봇을 소재로 하는 SF소설은 더 이상 쓰지 말자'라는 명제로 여러 의견이 등장했을 때. 저는 당연히 '이제 그 짓거리 좀 그만하자'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반대의 의견들을 들어보니 무조건적으로 소재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순한 맛, 자극적이지 않고 무해한 콘텐츠이므로 '자극적인 소재'를 아예 다루지 않겠다.

라는 주장에도 당연히 동조를 하지만, 그럼에도 다뤄지는 '방법'에 대해 논의가 급선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SF 소설에서 등장하는 섹스 로봇이라는 소재는 일단 자극적이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이 소재를 사용하고, 혐오적으로 이용되며 독자에게 불쾌감만을 불러 일으킬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라고 주장합니다. 혐오 없이 다룰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제 각각 작가들의 역량 문제가 되겠죠.

이 소재로 다뤄질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하는가? (제 의견은 이곳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소재의 사용여부보다는, 그 소재를 다루는 방향의 문제잖아요. 사실은 그 지점을 전혀 관과하게 된 논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해한 위로와 공감의 콘텐츠에서 다루는 자극적인 소재는 다루는 방식을 수정하며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어두운 주제는 어떻게 될까?

웹예능에서 다루지 않는 어렵고 무거운 소재를 꺼리지 않고 끄집는 이 제작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챕터를 읽었습니다.

[이 거대한 위로 퍼레이드 앞에서]에서는 '친족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웹예능, 그것도 뮤직 토크쇼에서 전혀 다루지 않을 듯한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저자들은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와닿는 콘텐츠인 만큼 다양한 대중들로부터 쏟아지는 유대를 기반으로 한 '위로'와 '공감'에 초점을 맞춥니다. 아마도 실시간으로 사연을 보낸 시청자도 대중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인만큼 제작자들도 걱정을 안고 공개했다고 하는 에피소드인데, 그럼에도 사실 이 반응은 시청자 개개인에게 내제된 윤리의식만 믿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인터넷상에서 퍼져가는 속도와 방향성을 생각한다면, 저는 무언가 아직도 무섭다고 생각될 거 같기는 하더라고요. 아무리 제작자, 편집자들이 프로그램 가치에 맞는 편집방향으로 콘텐츠를 생산해 제공했다고 해도, 그 영상 자체가 다시 조작되어 유포되기 너무 쉬운 세상이니까요..

그럼에도 저자들은 이 '위로 퍼레이드'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이후 세 번째 챕터에서는 이제 가장 중요한,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흔히 말하는 '팬덤 형성'의 3단계를 이야기합니다.

1. 이름 부르기

2. 유대감 쌓기

3. 선순환 커뮤니티 만들기

이렇게 세 단계로 구성되는대요. 역시 이름의 힘이 중요하죠. 개인들에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이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면, 당연히 그들이 점유한 커뮤니티 속의 관계들도 선순환이 되겠죠? 게다가 충성도 높은 팬덤은 자발적으로 마케터의 역할, 확성기의 역할을 해주니, 제작에서 팬덤형성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다음 챕터에서 공동 제작사들과의 협력과 협동을 중시해야한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이어 합니다.

콘텐츠 제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보다는, <고막 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무자들의 노력과 철학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어렵지 않기에, 콘텐츠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이 처음 읽기 좋은 책이고, 또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꼭지에 실질적인 콘텐츠 제작 팁도 포함되어 있기에 한 번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또 이 책을 읽고 <고막 메이트>를 찾아 보기도 했고요.

참, 콘텐츠 만들기도 어려운데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이 시대에 나는 또 어떤 콘텐츠들을 골라서 보는지 조금 되짚어 보는 책이었던 거 같아요.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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