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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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봉투를 열었을 때 생각보다 작고 얇은 책에 우선 놀랐다. 산문집이라기보다는 시집 같은 외형의 책. , 그리고 정말 시와 같은 문장은 아닐지라도 시와 같은 마음이 책에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표지에는 미술 에세이라고 나와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삶의 태도에 관한 에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저자는 물론이고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작가들의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목차의 구성이 조금 독특하다. 책의 제목을 지은 계기에 대해 쓴 작가의 말을 지나 본문은 나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새-호랑이--이야기-돼지-원숭이-사자-청각-풍경화-아파트--사물을 거쳐 다시 나무로 돌아온다. 나무에는 새가 살고 새의 이야기는 빅 이어라는 탐조 대회에 관한 영화로 이어지고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잭 블랙은 호랑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즐겨 입고... 이렇게 이야기는 순환해서 결국 처음 시작한 나무로 돌아온다. 생명이 순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생물과 비생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미술 에세이라고 한다면 회화, 조각 등을 소개하고 저자의 심상을 논하는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 중 상당수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위의 사진은 돼지꼭지에서 소개하는 조은지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 작업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조은지 작가는 개 농장의 개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식용 목적으로 도살된 예정인 소들을 목욕 시켜준다.

 

미술은 한자로 아름다울 미’(), ‘재주, 방법 술’()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표준 국어 대사전엔 미술이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그림ㆍ조각ㆍ건축ㆍ공예ㆍ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ㆍ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정의되어 있지만 이건 좁은 의미의 미술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보기에 좋고 예쁜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삶과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기술을 미술이라고 정의한다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 하나하나가 깊게 다가온다. 현대미술은 어렵지만 동시대를 사는, 감수성 예민한 자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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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1~2 세트 - 전2권 (스페셜 에디션) - 고흐의 시선과 열정을 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박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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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워요. 소장 가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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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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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벌써 20년도 넘었지만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미켈란젤로라는 예술가에 대해 알게 됐고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마다 그의 작품을 접했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신과 같은 예술가라 불리었고 당시엔 정말 드물게도 89세까지 장수하며 죽기 직전까지 대리석을 다듬고 어루만진 사람. 미켈란젤로는 평생토록 본인을 조각가라 생각했지만 회화, 건축, 거기다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고 그 중에서도 조각, 회화, 건축에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우리가 미켈란젤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인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와 피렌체의 다비드가 아닌 다른 작품에 주목한다. 아마도, 임종하는 순간에도 마음에 남았을 성 베드로 대성당. 신앙심이 깊은 미켈란젤로였기에 더욱더.

 

저자는 세계적인 미켈란젤로 연구자이다. 이미 미켈란젤로의 전 생애를 다룬 책을 쓴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왜 말년의 미켈란젤로에게 이토록 소홀했는가. 가장 유명한 작품이 청장년기에 제작되었고 나이가 든 미켈란젤로는 괄목한 만한 예술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죽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고 심지어 그 결과물은 역시나 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예술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 그렇다면 미켈란젤로의 말년에도 좀 더 주목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미켈란젤로를 좋아하고 그를 다룬 책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엔 내가 알지 못한 미켈란젤로의 이면이 있었다. 꼬장꼬장한 외골수, 고집불통 늙은이가 아니라 내 사람에겐 온전한 신뢰와 애정을 주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미켈란젤로를 오해(?)하고 있었단 사실에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미켈란젤로가 워낙에 장수했다 보니 그가 아끼고 사랑한 많은 사람들을 앞서 보냈고 그때마다 예술가는 무너져 내리면서도 끝까지 예술혼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읽는 내내 마음 아프면서 경이로웠다. 건축 용어나 방법론이 많이 나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내용이 조금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사소한 단점. , 얼른 다시 이탈리아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앞에 두고 싶다. 노년의 미켈란젤로를 만났으니 이제 그의 작품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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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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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대학로를 지켜온 책방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딱 한번밖에 가본 적 없는 주제에도 속상했다. 어떻게 하면 풀무질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갑론을박이 오가던 그 때, (아 진부한 표현인데...) 혜성같이 나타난 청년. 응? 록 밴들 보컬이라고? 당장 그의 독특한 이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20대 남성. 내 편견 속 전형적인 ‘이대남’과는 달랐다. 본인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먹고 살기 바빠 풀무질과 전범선은 곧 내 기억에서 잊혔다. 그 사이 기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고 채식을 지향하는 인구가 늘어났으며 플라스틱 용기 없이 세제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이 생겨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얼핏 보면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실들은 인간 종의 욕심과 반성이란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초고를 새해 첫 열흘 동안 지리산 자락 산청에 틀어박혀 썼다고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물리고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연인과 함께 보내며. 정말 이 내용을 열흘 만에 썼다고? 소로우, 데카르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본인의 생각을 조목조목 전개해 나가는 이 글을? 이런 사람이 우리 편(?)이라 참 다행이야!

 

누군가에게 이 책은 참 급진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동물을 ‘마리’가 아니라 ‘명’으로 세는 것부터 뜨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어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게 채식을 지향하며 동물 학대에 치를 떨고 야생 동물 보호를 부르짖는 나조차도 ‘인간 그리고 다른 동물’의 구도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을 ‘명’으로 세는 게 익숙해지면 인간, 원숭이, 고래 등 각각의 종을 개별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이 세상 수많은 생물 종 중 오직 인간만이 (생존에 상관없이 유희 등을 위한) 불필요한 살생을 한다. 마치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며 다른 생물 종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책에선 말한다. 인종, 성별, 직업에 대한 차별 등이 끊임없는 자각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 옅어졌듯이 종차별 역시 그리 되리라고. 사냥꾼 인간이 ‘사랑꾼’으로 거듭난다면 이 지구별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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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편지 - 제인 오스틴부터 수전 손택까지
마이클 버드. 올랜도 버드 지음, 황종민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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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빅토르 위고, 헤르만 헤세, 조지 버나드 쇼, 레프 톨스토이, 에드거 앨랜 포, 프란츠 카프카...... 쟁쟁하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의 작가들이 쓴 편지를 한권으로 갈무리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의 편지는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서간집이 흥미로운 이유는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편지 중 가장 오래 전에 쓴 편지는 1499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쓴 편지이고 가장 최근에 쓴 편지는 1988년 수전 손택이 쓴 편지이다. 그 말은 곧, 책에 실린 편지를 쓴 작가들은 모두 과거의 사람이라는 뜻. 그들의 작품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읽혔고 작가 개인의 삶 역시 공개된 모든 자료를 통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편지는 조금 내밀한 느낌이 있다. 책 속에는 업무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도 있지만 대부분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 위주라 그동안 몰랐던 작가의 다른 면모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남자 옷을 입고 당당히 파리 거리를 누빈 여성 산책자인 조르주 상드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우리는 다정하고 열정적인 할머니인 상드를 만날 수 있다.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드나들던 살롱의 안주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벗의 어린 아들에게 달달한 케이크와 달달한 캔디를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한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부모인 정치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주고받은 편지에는 출산 직전의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물론 책에는 메리 셸리와 남편 퍼시 비시 셸리의 편지도 실려 있다.

 

또한 작가의 편지는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물성을 가진 책 자체로 봐도 아름답다. 본문에 나오는 편지 내용의 일부를 음각으로 새겨 넣은 쨍한 보라색 표지부터 눈에 띈다. 그리고 본문은 왼쪽 페이지에 편지 원본, 오른쪽 페이지에 간단한 배경 설명과 함께 편지 내용의 번역이 실려 있다. 필체와 편지지,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편지도 있어 원본만 쭉 살펴봐도 정말 흥미롭다.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에 나온 예술가의 편지도 편지 한 통 한 통 정말 아껴가며 읽었고 다정한 편지의 내용이 좋아 지금도 종종 들춰보곤 하는데 작가의 편지도 후루룩 일독한 후에도 두고두고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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