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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평점 :
30년 넘게 대학로를 지켜온 책방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딱 한번밖에 가본 적 없는 주제에도 속상했다. 어떻게 하면 풀무질을 지켜낼 수 있을까, 갑론을박이 오가던 그 때, (아 진부한 표현인데...) 혜성같이 나타난 청년. 응? 록 밴들 보컬이라고? 당장 그의 독특한 이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20대 남성. 내 편견 속 전형적인 ‘이대남’과는 달랐다. 본인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먹고 살기 바빠 풀무질과 전범선은 곧 내 기억에서 잊혔다. 그 사이 기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고 채식을 지향하는 인구가 늘어났으며 플라스틱 용기 없이 세제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이 생겨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19가 찾아왔다. 얼핏 보면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실들은 인간 종의 욕심과 반성이란 공통점으로 묶여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초고를 새해 첫 열흘 동안 지리산 자락 산청에 틀어박혀 썼다고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물리고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연인과 함께 보내며. 정말 이 내용을 열흘 만에 썼다고? 소로우, 데카르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본인의 생각을 조목조목 전개해 나가는 이 글을? 이런 사람이 우리 편(?)이라 참 다행이야!
누군가에게 이 책은 참 급진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다. 동물을 ‘마리’가 아니라 ‘명’으로 세는 것부터 뜨악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어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게 채식을 지향하며 동물 학대에 치를 떨고 야생 동물 보호를 부르짖는 나조차도 ‘인간 그리고 다른 동물’의 구도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동물을 ‘명’으로 세는 게 익숙해지면 인간, 원숭이, 고래 등 각각의 종을 개별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이 세상 수많은 생물 종 중 오직 인간만이 (생존에 상관없이 유희 등을 위한) 불필요한 살생을 한다. 마치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며 다른 생물 종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책에선 말한다. 인종, 성별, 직업에 대한 차별 등이 끊임없는 자각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 옅어졌듯이 종차별 역시 그리 되리라고. 사냥꾼 인간이 ‘사랑꾼’으로 거듭난다면 이 지구별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