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과 無意識의 象徵
칼 구스타브 융 엮음, 이부영 외 옮김 / 집문당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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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가 버글버글 하고 옛날 번역이기까지 한데도 읽는 재미에 완전 빠져듭니다. 강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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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22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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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중 융과 헨더슨 글을 묶어 만든 책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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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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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짜리 구판에 없던 오자가 여럿 보입니다. 1권 주석을 2권에 몰아주는 센스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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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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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알베르트에게 보여주고자 연인이 되는 순간… 그들은 진짜 연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우리에게는 이것이 그들에게 색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이 죄악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죄악에 몸을 담그게 되면, 그 때는 기대할 수 있다. 우리와 그들이 뒤섞이게 되리라고. 그들과 우리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나는 이해했다. 또한 이 죄악으로 인해 그들이 추악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의 젊음, 그 싱싱함은, 비록 죄의 빛깔을 띠게 될지라도, 우리의 시든 손에 이끌려 타락으로 인도될지라도, 그리하여 우리와 뒤섞여 혼탁해질지라도, 그 죄악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풍요하고 충만해지리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렴! 나는 알고 있었다! 온순하게 말 잘 듣는, 그저 귀엽기만 한 젊음 따위가 무슨 재미가 있는가! 중요한 건 그런 젊음을 재료로 또 다른 젊음, 우리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을 제조해 내는 일이었다." (187) 

화자(비톨트)와 프레데릭은 16살의 소년과 소녀를 본 순간, 그들이 지닌 젊음의 자장에 이끌리게 됩니다. 하여, 상상력이 무지하게 풍부하면서도 잔혹한 데가 있는 이 '성숙함'들은, '젊음', 즉 '순진무구한 소년, 소녀'를 함께 엮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 음모를 꾸미기 위해 두 사람은 소년 소녀의 손짓과 눈짓 하나,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들을 관찰하고, 거기에 의미심장한-그러니까, 관능적이고 색정적이며 도발적인- 요소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 요소를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돌려, 그들을 자극하고 조종하여, 인용한 문구 그대로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 즉 매우 색정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젊음을 창조해냅니다. 

이 소설의 묘미는 <은밀함>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화자인 비톨트와 그의 괴상한 친구 프레데릭이 주고받는 사악한 교감과 교묘한 음모도 역시 <은밀함>이라는 재미를 돋우는 데 한 몫 하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는 그러한 교감과 음모가 진행되기까지 화자가 취하는 <시선>의 방식이야말로, 이 <은밀함>이 주는 쾌감에 크게 기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관음>적이게 되는 시선을 따라 가다보면, 화자와 같이 숨죽여 그 풋풋하고 무심한 젊은이들이 풍겨대는 숨막힐 듯한 관능과 그 관능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들이 풍겨내는 짙은 '살' 내음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짜릿한 쾌감과 저열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게 해줍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인간이 지닌 어떤 어두운 면모를 즐겁게 폭로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여, 이 소설은, 사드의 소설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긍정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들-성숙이라든지, 도덕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지닌 허위를 비웃어주는 "키득거림"으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흐흐, 물론, 뒤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나면, 그 키득거림에 대하여 비톨트가, "자네는 너무 나갔어,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고!"라고 툴툴거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특히나 '성숙'에 반(反)하는 미성숙의 매혹 혹은 가치에 대한 곰브로비치의 관심은, <페르디두르케>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는데요, 페르디두르케에서도 아이 취급 당하는 성인 남자가 아이가 되어버려 학교로 돌아가 겪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렇습니다. '성년'과 '미성년'의 조합, 어울림, 아니 더 나아가 일종의 교합이라고까지 해야 할 것들이, 페르디두르케와 포르노그라피아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듯합니다. 여기에는 분명 '관능'도 있고, '반(反)도덕'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년과 미성년의 조합에서 나타나는 '인물과 인물의, 특징과 특징의 결합 방식'도, 이 작품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다음은 주요 인물 프레데릭의 생각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연극의 특성이란 '사람들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을 그들 각자가 가진 가능성들을 활용해서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또 연기자는 '가상의 인물이 되어볼',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인 척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품 속의 인물이 연기자에게 맞춰 구상되어, 마치 맞춤 양복처럼 연기자에게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약간 놀랐던 것은, '로베르 브레송'이 자신의 '시네마토그래프'에서 추구했던 '모델'에 대한 생각과, 프레데릭의 연극에 대한 생각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브레송은 배우를 '모델'이라고 칭하면서, 반(反)연기를 지향했는데요, 그 반연기라는 것은, 모델 자신이 갖고 있는 '꾸며지지 않은, 내부에 숨겨져 있는 그 자신의 본질'을 이끌어내는 데에 중점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캐릭터, 프레데릭이 소년과 소녀를 통해 이끌어내려고 하는 어떤 '젊음의 관능'과 비슷한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물론, 이 작품에서 약간 의심스러운 것은, 젊은이들이 지니고 있는 관능이, 어디까지가 그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인지 또 어디까지가 성인 남자들에 의해 촉발되고 자극되어 부풀어 오른 것인지, 젊은이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촉발한 성년들도 조금은 헷갈려 한다는 점입니다. '조합'이, '교합'으로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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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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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미쳤나?”  

“확실히 그렇지.” 다네카 군의관이 말했다. 

“자넨 그에게 비행 근무를 해제시킬 수가 있나?”  

“물론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우선 그가 신청을 해야지. 그것이 규칙의 일부이니까.”  

“그럼 왜 그는 신청을 하지 않는 거야?”  

“그야 미쳤으니까 그렇지.” 다네카 군의관이 말했다. 

“그렇게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당하고서도 계속해서 출격을 나간다니 미쳤을 수밖에 없어. 그럼 난 오르의 비행 근무를 면제시킬 수 있어. 하지만 우선 그가 신청을 해야지.”  

“비행 근무의 면제를 받기 위해서 그가 할 일은 그것뿐인가?”  

“그것뿐이야. 나한테 신청을 하라고 해.”  

“그러면 자네가 그의 비행 근무를 해제시킬 수 있나?” 요사리안이 물었다.  

“아니. 그러면 나는 그의 비행 근무를 해제할 수가 없어.”  

“그런 속임수catch가 있단 말인가?”  

“물론 함정catch이 있지.” 다네카 군의관이 대답했다.  

“캐치-22가 있으니까. 전투 임무를 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라도 정말로 미치지는 않았어.” 

함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캐치-22였는데, 그 규칙은 긴박한 현실적인 위험의 면전에서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심리의 전개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오르는 미쳤고 그래서 비행 근무를 해제 받을 수 있었다. 그가 할 일이라고는 신청하는 절차뿐이었는데, 그가 신청만 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미친 상태가 아니어서 다시 출격을 계속 나가야 한다. 출격을 더 나간다면 오르는 미치게 되며, 그러지 않는다면 정상적인데, 정상적이라면 그는 출격을 나가야 한다. 요사리안은 캐치-22의 이 구절이 내포한 절대적 단순성에 깊은 감동을 느껴서 존경스러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비행 대대에 근무하는 요사리안과 그의 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합니다. 요사리안에 병원에서 만난 사람이 누구이고 그들은 또 어떤 사람인지, 병원에서 나와 자대로 돌아간 요사리안이 재회한 부대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또 어떤 사람인지, 각각의 챕터로 작가는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챕터에는 마치 그럴 것처럼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실제 챕터에서 다루는 내용은 빈번하게 그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 때때로 그 인물이기도 하며 간혹 그 인물과 관련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요사리안이 비행 대대에 근무하고 있는데,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격 기준은 날마다 계속해서 늘어나게 되어 그들의 근무 역시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전쟁은 어쨌거나 계속해서 수행되고 있고, 그들은 그들이 누구와 싸우는지도 개의치 않고 그저 내려오는 명령에 따라 출격을 나가고, 때때로 명령에 따라 사격을 하기도 하며, 빈번하게 요사리안처럼 무능을 가장한 채 명령을 어기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요사리안에게 가장 커다란 목표는 이 미친 전쟁에서 살아 돌아가는 일이니 말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해 천막으로 돌아갔다가, 바에서 싸우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명령을 조르듯이 기다리기도 하며, 열병식에 열도 올려보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하며, 죽기도 하고, 미치기도 하고, 미친 줄 알았는데 안 미친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등,  

이 비행 대대에서는,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사람 환장하게 만들 만큼, 강렬하고도 괴상한 ‘사이코 드라마’가 온갖 버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 커다란 줄거리가 있기나 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로 꾸려진 부조리극 - 어떤 한 문장의 시작 부분을 보면, 앞으로 그 문장이 어떻게 매조지어지겠다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캐치-22에서의 문장들은 빈번하게 그 기대를 배반합니다. 이 배반은 정상적인 논리나 흐름으로 잡히지 않는, 말 그대로 모두가 미친 사람들만 버글버글한 비행 대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그 이상한 배반을 문제 삼지 않고, 그들 자신도 그러한 배반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 과연, 이 전쟁은 미치광이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구나, 아니 전쟁이 사람들을 모두 미치광이로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터져 나오는 웃음 사이로 얼핏얼핏 들게 되는 것이지요. 

인물들이 처해 있는 상황만큼이나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 또한 부조리극다운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매우 논리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우 비논리적인 ‘조항 22’라든지, 워싱턴 어빙/어빙 워싱턴이 누구인가를 두고 내리는 범죄 조사원의 결론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첫맛은 매우 우스운 코미디이지만 그 끝 맛은 매우 씁쓸한 비극의 뉘앙스를 지니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 코미디와 비극 사이의 아찔한 감각은 인물들이 처해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또 그려내는 상황은 얼마나 더 어이없을 것인지, 저는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2권으로 가면 조금 더 나아질까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다음 권으로 넘어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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