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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프레이리가 죽은 직후에 출간된 것으로 자유의 교육학과 더불어 프레이리의 마지막 저서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교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프레이리가 해주고 싶은 말들이 적힌 것이다. 70년대 대표 저서인 「페다고지」에서 프레이리는 문해교육을 강조하였다. 문해교육이란 단순히 문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자 이면에 반영된 세계를 읽어내는 활동이다. 자신이 프레이리의 의견에 어떠한 견해를 갖든, 프레이리의 사상에 대해 이해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프레이리에 대해서도 ‘세계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프레이리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정리가 되지 않았던 점은 교사의 정치성 문제다. 교사의 교육 행위가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라는 것인지, 현실을 인정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라는 것인 명확하지 않았던 점 말이다. 아무래도 전작들에 비해 교사에 초점을 맞춘 저서인지라 내 의문점을 명확하게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교육의 정치성 문제는 프레이리가 80년대 「교육과 정치의식」에서부터 논의해온 문제다. 교육과정 사회학적 연구나, 재개념주의와 같은 교육과정 관점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과정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다. 교육과정의 구성에는 여러 이해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지배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쉽다. 따라서 프레이리는 교사가 정해진 교육과정을 충실히 교육하는 것 만으로도 기존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교사는 교사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왜냐하면 편향된 가치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교사의 정치적 행위의 악영향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프레이리는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교육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다. 교육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교육의 사회적 목적 중 하나가 학생들을 민주적인 시민으로 기르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을 없을 것이다. 프레이리는 민주 시민이란 민주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민주적 성향이란 주권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법과 약속을 어기는지 감시하고,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는 성향을 말한다. 교육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학생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과 신뢰로운 관계를 쌓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대화와 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기에 교사가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써 하길 기대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프레이리는 주장한다.
프레이리의 지식관은 구성주의적 지식관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전통적 의미의 좌파와 같이 정답이나 진리를 정해두는 입장을 철저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정답을 정해둔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교육의 형태가 어떠하든 본질적으로는 교화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급진적인 사상가와는 달리 프레이리는 사회 변화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변화되어야 할 사회상의 정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의 변화는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서 늘 새롭게 모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이리에게 있어 일차적인 목적은 국가의 구성원들을 민주적 성향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기르는 일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장된 것이 대화를 중시하는 ‘문제제기식 교육’이다. 프레이리는 거의 모든 저서에서 자신의 사상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치부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프레이리가 의미한 방법론이란 교육의 형태가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프레이리가 거부한 전통적 의미의 좌파 사상가들의 교육도 겉으로는 대화의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교육의 활동 속에서 학습자가 도달해야 할 정답은 정해져 있다. 지배층이 피지배계층을 억압하는 사회구조를 깨닫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층이 피지배계층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단 한 개의 정답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교화인 것이다. 프레이리의 문제제기식 교육이 단순한 방법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교사와 학생이 함께 문제를 발견해가는 과정 자체가 중시되어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프레이리의 입장은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하면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현실성이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레이리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의도는 깊게 고민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의 불변성을 추구하는 근대성이 깨어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던 담론들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포스트모던의 배경을 고려할 때, 여러 담론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의심과 독단을 경계하며 대화를 하려는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 담론이 근대성에서의 탈피로 인해 생겨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진리로 여기고 다른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배격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치적 입장 또한 그렇다.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배척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올바른 태도라는 것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극우단체들도 어떤 시대에는 진보적이었던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가 진보라고 생각하는 내용들도 시대가 흐르면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추구되어야 하는 것은 보수나 진보가 주장하는 내용 자체가 아니다. 그 내용에 이르는 과정이 어떠한가가 진보와 보수를 결정짓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화에 임할 때 정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대화의 형식을 취할 뿐이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일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가정, 사회 등 모든 곳에서 대화하는 생활양식을 형성해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