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윤리적이고 가치론적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을 때,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을 두 분류로 나눈다. 하나는 문제의식을 갖도록 하는 책으로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서는 인식할 수 없었던 사람, 문제들에 대해 알리고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논의의 주제로 끌고갈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부류다. 다른 하나는 논의를 위한 책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학문적으로 심도있게 다루는 전문서적이다. 다른 이름을 붙이자면 전자는 가슴으로 읽는 책’, 후자는 머리로 읽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내 개인적인 분류에 따르자면 이 책은 가슴으로 읽는 책에 해당된다.

  책에는 저자의 특성으로 인해 겪었을 사회적 경험들이 잘 묻어난 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는 흑인계 여성이고, 이 책의 내용은 인종, 젠더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동성애자). 아무래도 미국을 배경으로 쓰인 책이다보니 미국의 문화들에 대해서는 확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일 테니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담아낸 정서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체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저자에게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성찰의 기회 또한 가질 수 있었다. 남성이면서 살고있는 나라에서 차별받는 인종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것이 많았으니, 저자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일수록 더욱 더 자신의 얘기 같고, 책을 붙잡고 울고, 분노하고 한탄하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워낙 잘 담아냈기에 이 책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을 주제로 연설을 하며 변화를 위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우리가 그렇게만 행동한다면 어쩌면 진짜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거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괄호를 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하지만 흑인 소녀들은 잊혀졌다. 이들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이전 사회에서 억압된 부분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여기서도 정신질환자의 차별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구나라고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자가 오바마를 비판할 의도가 아니었듯(내가 파악한 맥락에서는 그렇다) 나는 저자가 왜 정신질환자는 언급을 안해주냐! 라고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저자가 겪어온 경험들이 인종과 젠더에는 민감하게 될 수 있었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민감해볼 기회가 없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종차별이 더 중요하다, 성차별이 더 중요하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는 소모적인 얘기를 하고싶지 않다. 미국 철학자 존 듀이는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이란 저서에서 자유의 의미는 시대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바뀌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각종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결국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한 문제다. 처음에 인종차별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을 때 성차별에 대한 문제는 사람들에게 잘 인식되지 않았다. 어쩌면 인종차별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급진적 실천가들 중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인식 없이 왜곡된 성 도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는 성차별에 대한 담론이 계속적으로 형성되며 주목받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급진적인 사람들도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나 그들이 겪는 심리적 경험을 모른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졌을 수도 있다. 정신질환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소수자들은 존재할 것이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소수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고 우리는 이들에 대해 아직 무지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 각각이 처한 입장이 다르기에 수많은 갈등이 생겨나고 각자 저마다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들고 일어나서 바꾸길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다만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자신의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겸손이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 말이다. 자신이 인종문제든, 젠더 문제든, 그 외 기타 소수자 문제든 문제의식을 갖고 급진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급진적이라는 의미는 다른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것이며, 이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며 더 많이 안다는 착각 속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런 착각 속에 빠지게 될 때 어떤 급진적인 사상이라도 그 무엇보다 보수적인 사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독단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겐 자신의 무지를 알고 겸손하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어떤 주제에 대해 확실히 알때까지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으며 현실은 우리가 답을 찾을 때 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불완전함 속에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한 문제가 논의될 때, 내가 옳다고 믿고 열성적으로 달려온 길에 문제가 있었음을 마주하게 될 때, 자신의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열성적으로 추구한 믿음을 포기하려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명쾌한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아는 것에 대한 겸손, 믿었던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는 여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본적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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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9-15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를 통해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리뷰안에 다 담겨져 있네요. 저자도 저와같은 다른 독자들에게도 좋은 리뷰인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S.HYoon 2017-09-15 20:58   좋아요 0 | URL
시간내서 읽어주시고 좋은 피드백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