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심리학과 종교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이은봉 옮김 / 창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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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에 의해 생겨난 이후로 수많은 분파, 입장들이 생겨났다. 그중 융은 자신의 입장을 분석심리학이라 불렀다. 분석심리학의 입장에서 종교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융에 대답이 이 심리학과 종교의 주제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의해야 할 점은 제목에서 말하는 심리학이 현대적 의미의 심리학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분석)심리학과 종교내지는 정신분석학과 종교정도가 의미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이 아닌가 한다.

  융은 우선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다. 자신이 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해석 뿐,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융이 하려는 것은 종교현상이 옳다, 그르다, 사실이냐 허구냐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먼저 융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융에 의하면 정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과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이다. 의식의 차원에서 우리의 성격을 집행하는 중심이 바로 자아. 자아는 자신의 정신을 의식의 범위까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부분은 파악할 수 없다. 융은 우리가 인간의 정신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라 하며, 이론적 논의를 위해 인간 정신의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적 개념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자기.

  자기 라는 정신의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의식도 나의 일부이며 무의식도 나의 일부다. 그렇기에 무의식은 우리가 인지할 순 없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 정서, 행동에 영향을 행사한다. 융은 무의식에 대한 여러 개념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것이 콤플렉스그림자. 이들은 우리가 자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들이나 감정들이다. 열등한 기능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원시적인 욕구, 감정이라서 문명사회에 적합하지 않기에 거부한 것일수도 있다.

  융은 종교나 종교적 체험들을 특정한 심리적 현상으로 규명한다. 종교적 체험을 할 때의 심리적 현상은 특정한 패턴이나 형태를 가지는데, 이것은 그 종교의 종류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융이 말하는 종교는 카톨릭이냐 이슬람이냐 불교냐는 관계가 없는, 종교적 경험의 원천적 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종교적 체험은 매우 신비로우며, 과학적,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융은 이것을 우리 정신, 무의식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본다. 개인적 의견을 덧붙이자면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경험을 종교적 체험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융이 주목한 것은 상징과 원형들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적 체험을 위한 정형화된 형식들이 있다. 의식, 상징물, 전해내려오는 신화 등이다. 융은 시대,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의 상징과 원형들에는 공통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심지어는 몇몇 사례들을 통해 특정 개인이 그러한 종교적 상징과 원형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의 꿈에서는 공통된 상징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융은 이러한 경향성은 인류에겐 공통적인 심리적 경향성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제시한 개념이 집단 무의식이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라는 종이 공통적으로 가진 심리적 경향성인 원형들이 모여있는 곳을 말한다. 책을 마무리하며 융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탐구한 방법들을 통해서 특정한 형이상학적 진리를 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인간정신의 기능을 확인하고 관찰할 수는 있다. 고 말이다.

  무의식의 정신적 내용들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며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무의식을 억압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행위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하며 신경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우리의 무의식을 통합하여야 하며 이것이 융 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분석적 관점에서의 심리치료 목표이자 조건이 된다. 융의 관점과 방법론은 매우 특이하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융을 통해서 어떠한 진리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융의 관점과 방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정서적 정화경험을 겪을 수도 있다. 진리의 탐구가 아니라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융의 방법을 통해 주어진 해석이 특정 개인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반영하지 않는 허구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개인이 얼마나 새롭고 특이한 정신적 체험을 하고(융의 의미로 이를 종교적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신적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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