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제한된 분량 내에서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나는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 읽기가 편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작품 속의 사상은 소설의 장단으로 차이는 나지 않으므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외국 문학에만 길들여져 있고, 오히려 우리 문학은 어릴 때 구전 동화 정도,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린 정도 외에는 공부에 치여 읽기가 힘들다. 외국 문학은 아동용으로도 널리 읽히게끔 써주는데 우리 소설은 왜 그게 안 될까...그나마 입시 제도가 많이 바뀌어 교과서 외적인 요소가 중요해 짐에 따라 우리 고전을 편집한 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 책도 수능용으로-_- 괜찮은 듯 하다. 1900년대 초반의 중요한 단편 작품들은 거의 다 수록되어 있다. 김동인이 근대 단편 소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감자를 써서 그랬는지 이 책도 감자로 시작한다. 이 책 대부분의 소설들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이리저리 완전히 발가벗겨져 분해된 소설이다. 내가 읽고 무언가를 느끼기 전에 이미 참고서에 밑줄 쳐져서 주제가 뭔지 간편하게 이해시켜 주었다. 수록된 소설이 많으므로 그 중 두 가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말하고 싶다. 정비석의 성황당이란 소설은 처음 읽어보지만, 자연을 묘사한 부분은 가장 아름답고 상세해서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 보았다. 그리고 이상의 날개는 언제 보아도 참 독특하다. 특히 도입부의 개성적인 문구들, 외부와 단절되어 자신만의 세계로만 파고드는 자폐적인 주인공의 행태, 마지막으로 소설의 제목인 된 날개를 포함한 석 줄의 문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몇몇 작품에선 사투리가 많이 나오고 특히 염상섭의 두 파산은 사채를 꾸어다 쓴 걸 갚는 얘기가 나오는데 변리가 어쩌구저쩌구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현대 표준어로 고쳐쓴 부분은 아주 가끔 눈에 띄이는데 좀 어색하다. 물론 100년 전 말과 지금의 말이 많이 바뀌었으므로 읽기가 편하긴 하지만 웬지 느낌상으로는 한복에 하이힐을 신은 듯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