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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빌가의 테스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서양문학 16 ㅣ SNUP 동서양의 고전 20
토머스 하디 지음, 김보원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줄거리
배경은 블랙무어 골짜기의 한 마을. 잭 더비필드는 가난한 도붓장수이다. 트링엄 신부는 마을을 지나가던 길에 잭 더비필드에게 더비필드네 가문이 원래 유서 깊은 더버빌 가문이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몰락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잭 더비필드는 그 사실을 집에 알리고, 부인인 조운 더비필드와 다른 마을에 있는 더버빌 부인에게 사촌이라고 알리고 테스를 보낼 생각을 한다. 테스는 아버지 대신 도붓장수 일을 하러 나갔다가 집안의 가보라고 볼 수 있는 말을 죽이게 되고, 말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다른 마을에 있는 더버빌 부인의 집에 가서 일을 한다. 거기서 더버빌 부인의 아들 알렉의 눈에 들지만, 테스는 알렉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렉은 테스를 임신시키고, 알렉은 테스의 임신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 마을을 떠나며 테스 역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이를 낳았으나 1년이 채 못 되어 죽었다.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다가 테스는 여름에 어머니의 사촌이 있는 다른 마을에 가서 목장 일을 한다. 거기서 예전에 고향 마을에서 춤을 추고 간 적이 있는 엔젤 클레어를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테스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은 채, 그 과거 때문에 엔젤의 결혼을 쉽게 승낙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결국 결혼한다. 신혼 첫날 밤, 엔젤은 자신이 과거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잔 잘못을 했다고 테스에게 고백하고, 이 고백을 들은 테스도 자신의 과거를 엔젤에게 고백한다. 엔젤은 충격을 받고 이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한 다음, 다음 날 둘은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엔젤은 브라질에서 농사일을 알아보며 역병에 시달리는 등 고생을 하고, 테스도 척박한 환경의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고생을 하다가 그 곳에서 개심하여 목사 일을 하고 있는 알렉 더버빌을 만난다. 알렉 더버빌은 테스를 자꾸 쫓아다니고, 가난한 테스의 집안을 도와주기도 한다. 테스의 아버지 잭 더비필드가 죽고, 더비필드 가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 전전긍긍하지만, 알렉 더버빌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테스는 알렉과 결혼한다. 그러던 중 엔젤은 브라질에서 돌아온 후 테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테스를 찾아나선다. 테스는 알고 보니 알렉 더버빌과 결혼한 상태. 하지만 엔젤이 테스를 찾아온 날 테스는 알렉을 죽이고 엔젤과 며칠간의 도피 생활을 하다가 살인죄로 잡혀서 죽게 된다.
Comment
어느 세상, 어느 사회에 살던지 원하는 사랑을 얻는 건 힘든걸까 ?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책.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 가의 테스'를 읽었다. 내가 산 책은 500장이나 되는 굵은 번역본이라서 책의 내용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그리고 먼저 짧게 간추려진 번역본을 읽은 친구들에게서 "프랑켄슈타인에 비하면 진짜 재미없고 지루하다."라는 평을 들은 터라, 책을 사고 나서 한 동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겐 시험이나 발표 준비와 같은 일이 닥치면 평소 손에 쥐어지지 않던 책도 정말 재미있게 읽히고 그 책을 읽는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11월 둘째 주 주말에 그랬다. 11월 셋째 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교양과목 발표와 영문학사 다윈 부분 발표가 있어서 나폴레옹 책에 관한 책과 영문학사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테스가 손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결국 과제는 테스를 다 읽은 일요일 밤부터 시작했다. 쨌든, 그 덕분으로 테스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테스를 읽는 동안 나는 집안(가문), 사회, 그리고 여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맏이인 테스가 가난한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하여, (사실은 말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더버빌 가의 하녀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어렸을 적 보았던 '육남매'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거기서도 맏이인 딸이 가난한 집안과 동생들을 위해서 공장에 들어가 힘들게 일을 했었는데.. 안타까웠다. 테스에게는 자신이 뭘 하고 싶다는 꿈이 없었을까? 아니,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는, 뭘 하겠다는 그런 구체적인 꿈같은 게 없이 그냥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야 했고,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일을 하고, 결혼을 해야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하지만 끝부분에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알렉을 죽이는 테스를 보면서,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부모님께 가기 싫다는 표현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명망 있는 더버빌 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잭과 조안 더비필드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허세를 부리는 걸 보면서 사회 속에서 가문의 역할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몰락하고 도붓장수 일이나 하는 가난한 집안인데, 그런 더버빌 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자신들에게 무슨 이익을 얼마나 줄까봐서.. 그런데 괜히 허세를 부리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뭔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우리 부모님도 내가 꽤 귀여웠던 어린 시절, 딸이 귀엽다는 자랑을 서슴없이 하셨고 (왜 요즘에는 안 하시는지 모르겠다. :( 얼굴이 많이 변했나 보다. ) 성적을 잘 받아오거나, 남자친구한테 커다란 곰인형을 받아 온 것도 자랑하셨으니. 음, 어쩌면 이건 허세랑은 조금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테스가 속한 사회가 참 불합리 해 보였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순결을 억지로 뺏긴 건데, 자신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사회. 왜냐면 여자니깐. 비슷한 경험을 엔젤도 가지고 있는데, 엔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왜 ? 남자니깐. 딱 내가 싫어하는 사회다.
책이 길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배경 묘사가 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배경 묘사를 상세하게 해 놓으면 책을 읽고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걸까? 내가 책 읽을 때와 읽고 나서를 생각해 봤는데, 배경에 대한 부분에서는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
나도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나는 테스를 읽으며 내가 테스가 된 기분이었다. 자꾸만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요하는 알렉이 싫었고, 도대체 떠난 이후로 힘들어 죽겠는데, 게다가 다른 남자가 집적거리는데 편지 한통 없는 엔젤이 미웠다. 그리고 테스를 그렇게 만든 집안 상황이 싫었다. 엔젤도 너무 했다. 테스가 자신의 의지대로 한 것도 아니고, 자신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것인데, 그 고통을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며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한순간에 사랑했던 감정이 식어버리고, 차가운 눈초리로 테스를 바라보고. 책 속에서 테스는 다른 남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자란 다 똑같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자친구도 엔젤과 같은 똑같은 남자라는 동물이고.
테스가 얼굴이 예뻐서 그렇게 불쌍한 삶을 산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래도 여자는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스가 있었던 시대에도, 그리고 내가 사는 시대에도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얼굴이 예쁘다고 살기 불편한 건 아니니깐. 오히려 득이 되면 득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