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도 이런 사례를 자주 접한다. 예를 들어 성희롱이나 상사의 괴롭힘. 이 또한 기억에만 의지한 고발로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또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사례다. 한쪽은피해를 주장하고 다른 쪽은 거짓 또는 잘못된 기억이라고 반론한다. 이때 ‘진실‘이란 무엇인가? 제3자가 할 수 있는 것은어딘가에서 진실 탐구를 그만두고 잠정적인 사실을 확정하여 일정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끝난 것‘으로 하는 것 외에는방도가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불만이겠지만, 이는 사람의 말이 지닌 불가피한 한계다. 말의 해석은 끝없이 쌓아갈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고, 반대로가해자는 얼마든지 억지 논리로 빠져나갈 수 있다. 말만으로다툼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 P98
표상문화론은 자주 ‘표상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거론한다. 재해와 전쟁 등 너무 심각하고 복잡해서 단순히 기록으로 남기거나 이야기로 만드는 것으로는 그 본질을 전할 수 없는 사태를 표현하는 용어다. 전후 유럽의 사상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을 만들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 대표적이다. 홀로코스트는 ‘표상가능한가(말로 할 수 있는가)? 이는 전후 유럽 철학의 큰 주제였다. - P66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우선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는 것, 즉 ‘현지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가게 하려면 ‘관광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내가 아우슈비츠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관광지가 되어 크라쿠프에서 정기적으로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거론하지 않은 채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비극의 장소가 관광지가 되면서 아우슈비츠의 ‘정말 소중한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관광지가 되는 게 낫다고 본다. 아무리 조야한관광지가 되더라도 비극의 편린은 남기 마련이고, 그 편린만으로도 사람의 인생은 충분히 바뀐다. 그런 마음이 후쿠시마제1원전을 ‘관광지화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 P67
이 지역은 해안선 부근에 특수한 암반이 있어서 자연방사선량이 높다는 것도 흥미롭다. 높은 곳은 연간 20밀리시버트 (sievert, 방사선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측정단위, 약어 SV) 정도로, 일부 지방은 쌍둥이 출생률이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높다고한다. IT, 좌익 정권, 관광, 방사능. 앞으로 자세히 다루겠지만,"후쿠시마 제1 원전 관광지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나에게관심이 가는 키워드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 P28
그러나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얘기한 내용이 인터넷에 일본어로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다.그런데도 나는 몰랐다. 대부분의 독자도 몰랐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인터넷에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도 특정 검색어로 검색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다. 케랄라의 정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검색창에 ‘케랄라‘라고 입력해야 한다. 이것이 인터넷의 특성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케랄라‘에 도달했을까? - P28
인도에 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에 가지 않았다면케랄라를 검색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평생 검색할 일이 없었던 단어일지도 모른다. 이와같이 인터넷은 ‘현실‘을 필요로한다. - P29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되면서 상품이나 자본의 이동에서 국경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도 크게 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최소 1억 원 이상을 투자하면서 국내기업 주식 등의 10% 이상을 취득하거나 외국인 투자기업이 해외모기업으로부터 5년 이상의 장기 차관을 도입하는 것을 외국인 직접투자라고 하는데1998년 이후 점차 확대되어 2019년에 233억 달러를, 2020년에 207억 달러를 기록했다. 산업별로는 서비스업이 147억 달러로 가장 높다. 한편,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외국기업의 10% 이상의 주식을 취득하는 것을 내국인 직접투자라고 하는데, 2018년에는 497.8억 달러, 2019년에는 618.5억 달러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에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549.1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런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국제거래의 유형도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유형 상품의 거래나 자금의이전 등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형자산의 이전이나 역외펀드를 통한 투자활동, 파생금융상품 등으로 복잡·다양화되고 있다. - P13
어쩌면 줄기차게 실망하면서도 스포츠 회고록을 계속 사게 만드는 원동력은 구체 속에서 천재성을 경험하고 추상 속에서 천재성을 일반화하려는 깊은 충동인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천재를 정의하기가 그토록 불가능하고 참된 ‘테크네’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토록 찾아보기 힘들기에 우리는 운동선수로서 천재인 사람들이 강연자와 저술가로서도 천재이고 명석하고 예민하고 진실하고 심오하리라 막연히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위에서의 천재가 성찰에서도 천재일 거라 기대하는 우리의 어수룩함이 문제라면, 그들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칸트의 유리턱이나 T. S. 엘리엇의 커브 헛스윙보다 조금이라도 비참하거나 환멸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