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의 마법사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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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가 화려하게 붙어 있는 '크렘린의 마법사'는 읽어봐야만 왜 그런지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러시아 고전 문학의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서일까...... 내겐 러시아 문학과 예술, 정치, 사회, 과학 및 건축.... 모든 영역이 시작 전부터 머리가 무거워진다. 이름도 어렵고, 체제도 낯설고, 그들만의 독특한 이념 수긍 방식도 보편적이지는 않아서일까.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크렘린의 마법사'가 책세상을 통해 출간되었는데, 지난 세기 동안 지구상에서 독자적으로 돌아가는 듯한 그들만의 세상이 어떤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 첫 책이었다.
굉장한 소설이다.

바딤 바라노프.
차르의 고문직을 맡던 요주의 인물. 책은 그의 회고적 텔링으로 거의 모든 시절을 덤덤하게 이끌어간다. 권력의 추상적 이미지가 그의 한마디에 정의된다. 힘 있는 사람 대부분은 현재 머무는 직위로부터 자신의 아우라를 끌어낸다.... 얼마나 간단명료한 권력의 형태인지.....

러시아를 아는 사람은, 우리에게 권력이란 대지의 주기적 운동에 종속한다는 사실까지 알기 마련입니다.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 흐름을 바꾸는 시도가 가능하지요. 그러나 일단 운동이 시작되면, 사회의 모든 톱니 장치는 말 없는 불가역의 논리에 따라 제 위치를 찾아갑니다. 그런 움직임에 저항하는 자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공전에 반하는 것만큼 헛된 일이지요.
--- p.165

푸틴이 자신의 정치권력 야욕을 드러내며 자신의 지지도 경쟁을 스탈린에서 찾는 장면은 소름이 돋았다. 푸틴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러시아 세계이권찬탈을 구상하며 그렸을 전쟁그림은 우크라이나를 통해 정교하게 드러났다.
'오렌지 혁명' -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을 희망하며 고개를 들었더니 그들은 이렇게 이 사태를 명명한다.
러시아의 실상이 어떤 상태인지 팩트와 픽션이 절묘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직조되어 있어 거울효과처럼 보인다. 이 소설만이 가진 맛이 바로 이런 것이다. 줄리아노 다 엠폴리 작가는 국제 정치 전문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크렘린의 마법사'는 그의 첫 프랑스어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담아내는 인물들의 구체적 활동들은 독자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스토리는 전혀 어설프지 않고 사건들을 통제하는 속도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네레이션이 배치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서사가 전반부를 통해 할애되지만 나는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러시아 실정에 대해 머릿속에 차분히 입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다큐멘터리 자료를 수집하고자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주인공 '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한 젊은 청년을 알게 되고 그의 리드에 이끌려 방문한 한 저택에서 바딤, 혹은 바쟈로 불리는 자를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스크바는 필터링 없이 유입된 서구 문명의 여파로 계층의 결이 바뀌고, 부의 급증과 개개인이 자유롭게 벌크화되는 사회현상을 격는 중이다.
이를 우려하는 사람도, 반기는 사람도 미래 사회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끌어안고 가는 길은 동일하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의 오히려 이들에게 극강의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온다. 강한 자의 결단과 통제를 그리워 하고 갈망하던 이들의 귀속성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푸틴 등장을 은근 반긴다.

우리는 작가를 통해 러시아의 시대 아이콘이던 보리스 옐친,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예브게니 프리고진 등을 상기할 수 있고, 체첸전쟁, 소치올림픽, 중간중간 인용된 고전 문학의 명문장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시사적 문제들을 무게있게 고민해 볼 수 있다.
'권력'과 '인간'의 유동적 결탁은 국가체제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어떤 형태로 거대화되고 어떤 형태로 비윤리적 배반을 인삼는지, 또 인간 본능에 어떤 자극적 욕망으로 잠식하는지 가감없이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지금의 안위가 최선인지 그들의 동떨어진 안보 노선이 최악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를 준 올 해 최고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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