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서유럽 - 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 쏜살 문고
밀란 쿤데라 지음, 장진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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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신간살롱
『납치된 서유럽』​​


밀란 쿤데라 (지음) | 장진영 (옮김)
민음사-쏜살 문고 (펴냄)

난 왜 밀란 쿤데라가 좋을까.
20대 시절에도 좋았고, 30대 시절에도 좋았고, 40대인 지금도 여전히 좋다.
그냥 그의 이름이 좋았던 어린 시절엔 사상이고 철학이고 없었다.
그의 모든 말들이 의미를 뛰어 넘어 머릿속에 각인되던 시절이었다.
그가 체고인이라는 것이 어떤 상징을 주느냐는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던 '농담'이라는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눌러버린 나만의 최애 인생작이 되었다.
그런 그가 자국에 대한 위기를 통감하는 언사를 중앙 유럽의 진정한 비극이 어떤 것인지 강도높은 형태로 의식화하여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제목부터 적잖은 충격을 안겨준 <납치된 서유럽>이란 뜻은 무엇일까.
분명히 상대방에게 당한 내력이 있음을 시사하는 '납치된'의 의미를 숙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상대의 거대함과 압박에 짓눌려 나를 표현하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억울하게도 나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겨야 한다는 것이 '납치된' 이라면 우리는 서유럽의 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을 이해하고 각성하는데 우리의 역사관을 거울처럼 비춰볼 필요를 느낄 것이다. 중앙 유럽은 현재 정치, 사회와 문화면에서 모든 능동적 주체사상을 상실한채 끌려 다니는 약소 국가들의 한 묶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게는 유럽 모습 자체가 하나의 응집된 덩어리였던 상징적 모형이었지만, 체코의 역사가 나의 선입견을 바로잡아 주는 계기도 되었다. 
중앙유럽이란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의 국가를 지칭한다. 여기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하면, 로마 카톨릭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은 서유럽권에 속한다.
 하지만 지정학적 여건 상 러시아의 서진 욕망으로 이들을 '슬라브 세계'라 일컫는 신조어를 만들어 동유럽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엔 상대방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온 자신의 정체성이 지금은 원인을 망각한채 스스로가 이를 옹호하며 문화를 상실했다는 개념을 큰 문제점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중앙 유럽의 진정한 비극은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이다.
p.7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향한 서진 정책은  근접한 국가들의 안보와 세계 정치 경제까지 뒤흔드는 커다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서서히 그리고 급속도로 깨닫게 해 주고 있다.
20세기 초 중앙 유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가 된다. 그 반증으로 오스트리아 수도의 독창성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긴밀한 영향력 아래에 그들이 믿고 추앙했던 사상들은 강력한 유럽사의 뼈대를 구축하기에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특히 <납치된 서유럽>의 시선으로 본 유럽 통합과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고자 나아가던 서유럽의 행보와 또한 이를 지켜보며 역사와 문화적 뿌리를 공통적 근원으로 삼고 있음에도 소외를 당하는 중앙 유럽 국가들의 미약한 국권은 그 연결고리가 아주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가 바라본 체코인들의 문제점들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특히 각성기와 수면기를 번갈아 겪으며 매번 변화하는 유럽 문화 스타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도태될 수 밖에 없었고, 체계적인 문화 흡수 또한 원활하지 못했던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이런 역사와 사회문화적 콤플렉스는 어느 국가가 됐든 극복해 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바라봤던 한가지는 역시 인식과 교육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굳건해 진 제도 아래 민족의 정체성이 되살아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체코인들의 문학에 대한 애정과 번역에 대한 깊은 문예가 그들의 언어와 주권 그리고 정신을 보호하고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의 자주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사상을 튼튼히 하는데 무조건 그들만의 문화와 전통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의 근간은 문학이 주도하고 있다고 포괄적인 그의 가치관을 이 책의 두 편에 걸친 연설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의 그들을 읽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설득당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곧 그의 말의 힘은 쓰기에서 나오고 쓰기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가장 좋은 수단임을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화합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대한민국의 상황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그가 문학과 번역을 통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정리 습관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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