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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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자이의 색깔에 물들지 않을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완독에 이르기까지 커버 투 커버, 작품 하나한마다 빼놓지 않고 다자이만의 인생관을 관통하는 냉소적인 사랑과 고독, 쓸쓸함에 대한 여운을 중독처럼 안고 가야만 했다.
인간 실격과 사양을 통해 만났던 그의 문학 세계는 내게 너무나 깊은 감정의 변화를 일으켜 주었다. 뭐랄까 인간의 속살을 그대로 들추어낸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내면의 웅크리고 있던 죄의식 같은 어둡고 축축한 나만이 알고 있던 불편한 감정들이 어떤 힘에 이끌려 치유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그의 넉살을 이끌어 낸다. 그 해학과 죽음의 넌센스에 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면모도 그에게는 있었다.

특히 옛이야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존의 이야기를 다자이만의 색깔로 덧입혀 리메이크한 네 작품의 유쾌한 서민적 스토리는 정겹기까지 하다. 게다가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씨와 같은 작품은 내게도 너무 익숙한 전래동화인데다가 도깨비들 자체가 우리 고유의 것과 일본의 것으로 갈린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어 새로운 공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진짜 작품은 딴 데 있다. 내 마음의 1 순위는 여치다. 어떻게 이리도 섬세하게 여성의 단단한 내면을 흔들림 없이 그려낼 수 있을까. 그 여자가 사랑하는 법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신만의 인생 철학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그녀는 자신의 영원한 정신적 동반자를 원했다. 가난해도 가치를 알고 하얀 거짓말 조차도 선함의 범주에 넣길 거부하는 한결같이 낮아지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부끄럼 없는 삶의 가치가 몸에 밴 여자. 그것이 숙명이라 생각하는 여자. 여치는 내게 제일 강렬했던 작품이다. 

헤어지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만 했습니다.
- p.68 여치의 첫 문장 

 이 강렬한 첫 문장을 내 리뷰에 적지 않을 수 없다.
도쿄 팔경은 2 순위다. 이 작품에선 다자이의 청춘 시절, 그가 느꼈을 무기력하고 헛헛한 삶의 공을 채울 수 없어 죽음을 상상하거나 체험하는 분위기가 아픈 그의 살과 뼈를 잠식하는 순서를 도식처럼 보여준다. 십 년이다. 그가 도쿄에서 생활한 시간만도. 이곳에서 서른 줄 나이를 먹고 살아가기 위해 썼다는 글들은 유서가 아닌, 가난뱅이의 생계일환이었다. 

다자이의 글들은 읽기 쉽고, 직관적이고, 위트가 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굉장히 인간적이고, 가난하고, 슬프다. 그리고 믿음으로 전력질주하는 문학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이 있다. 그는 언제나 바닷속에 있는 사람처럼 군다. 사방만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위와 아래도 쳐다보며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가 우라시마 씨에서 거북이에 빗대어 말하듯 세월과 망각은 인간의 구원이므로 다자이가 노력했던 수고로움으로 행복을 지키면 우리도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그가 바랐던 희망을 오래 나이 먹도록 쥐고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여운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은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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