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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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기는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기억 속에도 없고 상상 속에도 없고 어디에도 없는, 누구도 닮지 않은,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아기는 온몸을 떨며 커다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디 있었니. 이제 왔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는 소리로 말하면서, 나는 내 가슴 위에서 우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 p.570

<여름의 문>은 내게 낯선 질문을 많이 던지는 소설이었다. 살아오면서 아직 겪어보지 못했던 차원의 물음들도 있었고, 이미 생명 윤리 인식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하여 그 흐름을 무섭게 타고 있는 기술 관료적 접근의 긍정적인 고민들도 의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낯선 질문들은 어렵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 받아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논의조차 협의된 일이 없었지 않나 싶어 아직 사회적 공론으로 다수의 의견이 분분하게 올라오기엔 먼 주제인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 본질인 생명 윤리에 관해서 근본부터 세밀하고 밀도있게 고민하고 차근차근 접근하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다양한 노력과 실천이 문학이라는 장르 안에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었다. 

주인공 나쓰코가 살고 있는 도쿄로 2008년 언니와 조카가 3일 동안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소설 1부에서 만나게 되고 2016년 38살, 나쓰코가  정자 제공AID 모임에서 아이자와 준과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게 되는 이야기를 2부에서 만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키우는 일이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이제는 말할 수 없다. 당연시 되었던 기존의 질서가 지금은 부가적인 행복의 조건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어쩌면 나쓰코와 같은 처지에 있어 공감하는 여성들이 나를 포함하여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고달프고 불안정했던 시절들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가난은 특정하게도 감성의 결핍을 더 무참히 파괴시키는 구나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녀는 위로부터 여성 3대의 연결고리가 지극히 약해 엄마나 할머니의 사랑에 결핍이 있다. 어쩌면 그녀의 결핍이 사랑과 행복, 연민, 인연에 관해 깊은 통찰을 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싶다. 마찬가지로 나쓰코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인물들은 여성이 누구인지에 관해 섬세하고 비정하게 말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됨으로써 울림이 있다. 
나쓰코가 고민하는 임신은 그녀의 나이에서도 나온다. 그녀는 아이와의 만남이 왜 필요한지 근원적인 행복에 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르다의 편 가르기가 아닌 개개인의 존재 이유와 행복의 가치를 존중하며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정자 제공이 쉽고 적극적인 대안으로 떠올라 문제 부부나 미혼들의 삶의 특정 가치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 역시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들만의 혼란스러움과 갈등들이 차고 넘치는 어두운 이면을 알게 되는 순간 나도 멈추게 된다. 그리고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안할 수가 없게 된다.

<여름의 문>은 우리들의 정해진 관습과 제도들에 맞서 싸워 나가는 무덥고 뜨거운 힘겨루기가 연속된다. 그러나 마지막엔 반드시 열고 나갈 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통과의례를 올곧게 대면하면 어느새 우리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깨닫고 문을 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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