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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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신간살롱
『러브 플랜트』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 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무조건 믿고 보는 작품집이다. 내가 배워야 할 세상의 개념들 중 은밀하거나 낯설거나 아무도 쉽게 설명해 주지 않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무감각한 무질서에 대한 물음을 넌지시 보여주는 건 트리플 시리즈가 최고다.
러브 플랜트라는 따뜻하고 색깔 분명한 정체성 담긴 식물정원 속에서 쑥쑥 자랄 것 같은 우리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아프고 여리고 저리다. 윤치규 작가는 식물을 가꾸는 일들이 마치 우리의 삶을 가꿔나가는 일들과 같다는 이치를 넌지시 비치며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별의 성장통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관계의 컷들은 머물러 고여있지 않고 언제나 반목 성장한다. 나이테를 하나하나 그리듯 같은 원을 그리는 듯 싶지만 절대 한 곳이 아닌 것이다.

희주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흔들렸기 때문일거다.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렸을 순간은 다름 아닌 지지대라 믿었던 남자의 흐리멍텅한 줏대 때문이었을 거다.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착하다고 할 수도 없는 그의 타협방식에 내가가 너무 무뎌져 있었던 것일까. 희주의 비혼이란 선택에 거리감을 느끼며 그녀의 성장점이었을 터닝 포인트를 비호감으로만 치부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그뿐일까, 희주가 야자나무와 팜나무의 구별 방식에 강조점을 찍은 이유는 나의 무뎌져있는 정체감에 경고를 주는 자극제였음에도 의미를 알아체지 못하고 둔탁한 내 방식대로만 희주를 바라보고 해석하려 했다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연애공식은 따로 없지만,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만나야할지는 고유한 플랜 방식이 있는 거다.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아닌데 대신 용서를 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건 러브 플랜트의 고유한 성장 방식이 아닌 것이다.
현영처럼 중독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현영을 제대로 가꿀 준비도 없이 덥썩 그녀를 집에 들여버린 남자도 있다. 죽이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잘 키우지도 못할 플랜트가 되어버린 둘의 상하수직적 관계. 이럴려고 그런건 아닌데 남자는 끝내 현영을 회생불능의 식물처럼 덩그러니 메마른 공기 속에 방치해 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현영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그녀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남자의 기대에 부흥해서 이쁨받는 화초가 되어야만 하는 것 같아서 그 운명이 너무 슬펐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현준은 자신의 기준대로 그녀를 몰아갔기에 배푼만큼 자신만 상처받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한번도 현준을 부정한 적 없던 아내였었기에 그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길들였던 현준이 어느 날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움츠리고 숨어 있는 꽃들이 피어오를 때는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고 고요 속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억지로 피워내는 식물은 병들거나 시들게 마련이다.
연애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끊임없는 삼투압 작용은 우리의 연애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끝내는 성장시킬 것이다. 
이쯤에서 나의 연애사를 돌아보면 지금도 똑같은 성장을 반복하고 있다. 다만 연애에서 헤어짐으로 또 다시 연애에서 결혼으로 시간이 바뀌었고, 계속해서 나이테를 그리며 도드라져 가고 있다. 사랑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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