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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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장편소설 ㅣ 문예출판사



지성은 나름 잘 살고 있다 소신하며 인생 절반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결혼은 예외인듯 싶은 것이 현재 1년 가까이 별거 중인데,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지성은 문학평론가이면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활동은 진보 진영을 지지하며 확고한 신념에 뿌리를 둔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해 사회적으로 지지층의 팬덤을 이루기도 했다. 칼럼도 쓰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며, 북토크 강연 사회자로도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승승장구, 그런줄만 알았던 그의 거침없는 질주에 제동이 걸린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존재의 모든 측면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자는, 더 이상 글쓰기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밥을 벌고 무엇으로 허허벌판 같은 생을 채워가야 하는가? 그는 자신에게 있는 글쓰기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문학에 대한 열망이 지긋지긋했다.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왜 재능은 사라지지 않는가. 왜 열망은 수그러들지 않는가.
261쪽

지성의 그날 밤 기억이 송두리째 블랙아웃이다. 그 사이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다. #미투 해시태그. 지성은 미투 가해자가 되어 버렸다. 상대는 지성의 오랜 친구이면서 동료 시인인 민주. 그녀는 미투를 밝히고 자살한다. 끊겨버린 그날 그밤의 기억은 지성에게 파괴된 일상과 삶의 추락을 가져왔고, 민주에게는 상실과 곧 죽음을 가져왔다. 

완력.  지성의 완력. 이것이 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의 첫 번째 문제다. 소설 내내 지성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보니 결국 간성인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잠재적 이야기로 읽혀졌다. 진실이 뭘까. 누구의 말이 옳은 걸까. 누구를 정죄해야 하는 걸까. 이 모든 물음은 헛것이었다.

민주의 사랑. 그것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민주는 보이는 모든 걸 사랑하는 종족이다. 우울증과 경계선 인격장애, 공황장애. 수많은 질병을 짊어진 채 만나는 생물들에게 잡아먹을 듯 덤벼든다. 지성은 상대에게 제 인생을 확 끼얹어버리는 듯한 민주가 부담스럽고 불길했다. 사랑한다니. 
78쪽


지성은 누구보다 자신의 선한 의지를 믿으며 자신을 신뢰하던 사람이다. 이 기준이 무너지기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단 하나. 타인에 대한 완력. 이 강제하는 힘이 갖는 의미는 너에게 있어 고통이고 부정하고 싶은 수치심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한때 사랑이고, 동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존의 의례적이고 암묵적 괜찮다의 표명이 통하리라 믿는 세대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지성의 행동을 판단해야 하는 나는 많이 혼란스럽고 답답했다. 특히 자본주의 사상, 진보와 보수진영의 정치 활동, 종교, 사회적 지위, 권력 등 이 모든 뿌리 깊은 차별적 시민 구조는 젠더와 맞서 있다는 데에 침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성평등 인식 변화의 지축을 흔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 과정을 분명 겪어가고 있지만 기존의 절대다수층과 부딪히는 성감수성 인식 차이는 여전히 한계를 짓고 만다. 앞으로도 더딘 걸음일 것이다. 

잘 봐. 한계에 갇혀 있는 건 형이야. 형이 학문에 갇혀 있는 거지. 내가 진짜로 살고 있는 거고. 형이야말로 그 함정에서 빠져나와. 말, 글,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지금 숨 쉬고, 말하고, 움직이는 몸, 그게 형이잖아? 그게 형이 그토록 좋아하는 실존이라고. 
137쪽

지성은 결백한걸까. 그의 지성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의 내적 쾌락 욕구는 자연스러운걸까. 그는 나쁜 남자일까, 착한 남자일까. 작가는 지성이 처한 현실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 볼 것을 호소하는 것 같다. 나는 오로지 나의 욕구와 쾌락을 위해 타인을 취하고 원하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지 시종일관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간성인지 모른다. 민주가 죽을 때까지 그토록 내려놓지 못한 문제는 사실 문제도 아니다. 
지성과 민주의 관계 말고도 나채리가 차지하는 상당부분은 또 다른 젠더의 갈등이 보여진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이미 야기된 다양한 갈등 구조를 반드시 우리가 해결한다는 신념 아래 포용하는 관용자세를 체득해야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여성의 육체에 멋대로 손대고 제 것처럼 구는 것은 분명 범죄고 폭력이다. 폭력으로 분류돼 처벌받아야 한다. 지성은 그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다. 남성들은 그 악습을 수십 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살아왔다. 사회의 상식이 급변했다면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갈 기회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낙인찍혀 남은 평생을 쓰레기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면, 어느 누가 성범죄자임을 인정하고 속죄하려 들겠는가. 
377쪽

 지성은 절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밤에 이미 그것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책좋사 서평 이벤트와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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