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세상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찬란한 헌사
🍃
가족의 나이 듦을 비로소 바라보게 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오래간만에 만난 신경숙 작가의 소설이다.
그동안 많은 한국 소설 작품들을 읽어 왔지만 곧 벚꽃 잎 흐드러질 때가 다가온 이 계절에 J 시의 읍내를 휘돌아가며 <아버지에게 갔었어>와 함께한 며칠은 비포장도로의 흙먼지 길을 돌아다닌 기분이었다.
판타지도 아니고, 페미니즘도 아니고, 타임 슬랩도 아닌 시대의 기억으로부터 나의 연대기를 돌아볼 계기가 되어 준 개인 서사다.
아버지는 어느 날의 바람 소리, 어느 날의 전쟁, 어느 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 날의 폭설, 어느 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76쪽
책을 덮고도 이 말이 계속 마음속에 돌아 필사를 해 두었다. 책 표지 위로 육십을 앞에 두고 아홉수에 돌아가신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 그래, 이런 말로 우리 아빠를 표현해 보고 싶었던가 보다, 나도.
소설을 풀어가는 넷째, 헌이는 어린 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후 엄마로서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품고 산다. 그런 헌이의 시각으로 그녀 엄마의 위암 시한부 선고 후 시골로 내려가 홀로 남은 아버지의 삶을 쓴다.
아버지는 전쟁 통을 지나 살아남았고, 빨치산에서 쫓기다 살아났으며, 돈 벌러 올라간 서울 한복판에서 4.19 혁명의 참혹한 그날을 목도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인지라 이리저리 재보거나 따져보지도 못하는데 천성이 선하고 우직한 탓도 있어 시대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함을 개인사로 묵묵히 인내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자식 여섯을 반듯하게 키워낸 아버지의 인생 사활이 걸린 소농장은 솟값의 대폭락이란 반전으로 빚더미에 앉는 참담한 농민 몰락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 그 시절 아버지들의 피 땀 눈물범벅이던 시위.
한 날 한 시절을 허투루 이야기할 수 없을 아버지의 날들.
하지만 우리는 절로 나고 큰 듯 그렇게 아버지 손에서 떠나왔고, 모든 존재의 상실을 뒤로 한 채 지금, 그리고 내일의 아버지를 잊고 산다. 아버지의 자리가 부재하도록 강퍅한 삶을 살아온 나 자신은 도대체 누굴까.
아버지가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93쪽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나의 아빠를 추억해보면, 얼마나 억울할까.
아버지, 그가 만족스럽게 살아내지 못하고 끝내 내려놓아야만 했던 삶의 언저리에 '살아냈어야'라는 말이 나오지 못한 채 우물 속에서 맴돌겠다.
초시대를 관통하며 소통의 부재를 느끼는 세대 간의 역사가 타인의 종말로 끝나지 않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보듬는 모두의 노고를 치하하는 묵념처럼 기억되길 바라본다. 지금 그렇게 가족을 돌아보고, 인생들을 챙기는 일이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아버지에게갔었어 #신경숙 #창비 #신경숙신작 #창비 #신간소설 #한국소설 #리딩투데이 #리투신간살롱 #리투지원도서 #리투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