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의 용도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의 용도
섹스 후 남겨진 흔적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록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의 내밀한 이야기
우리는 암묵적으로 사진 찍기를 계속했다. 섹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물질적인 표상을 보존해야만 했다. 어떤 것들은 관계 직후에 찍었고, 또 어떤 것들은 다음 날 아침에 찍기도 했다. 그 마지막 순간은 가장 감격스러웠다. 우리의 몸에서 벗겨져 나간 것들은 그들이 쓰러진 장소에서 추락한 자세 그대로 밤을 보냈다. 그것은 이미 멀어진 축제의 허물이었고, 낮에 그것들을 다시 본다는 것은 시간을 체감하는 일이었다.
10쪽
처음 이 책을 펴고 읽어내려 가면서 사랑에 관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말들을 풀어내나 싶어 설레였다. 그런데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 우리가 만나 매일 사랑을 하고 안부를 묻고 행복을 노래한다고 믿었던 시간들도 다시 돌아보면 기억은 아련해지고 비슷한 유형의 촉감이 습관처럼 때로는 강박처럼 남는 것일뿐임을 깨달았다. 시그니처. 그들의 흔적들을 여과없이 사진으로 남기고 그 순간을 반추하는 일이 그녀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 더 특별하게 읽힌 이야기들이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남자친구 마크 마리. 그들만의 시간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림자처럼 남은 흔적들은 정적이고 고요하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다잡는 사진에 대한 그녀와 그의 관점은 사랑의 다름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사진을 통해 침습하는 또 하나의 숨결.
그들의 선택은 그렇게 또 다른 삶의 열정과 사랑의 방식이 있노라 먼저 보여주고 그 길을 연다.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힘든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71쪽
아니 에르노의 이 솔직한 고백이 오히려 위안을 가져다준다.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적지 않은 관계들을 맺고 때론 희망적이게, 때론 절망적이게 엇갈릴 것들과 안부를 묻거나 묻어두고 갈 것들이 있다. 그럴때마다 어떤 결말을 보게 될 것인지 알면서도 걷게 되는 나의 길이 있는 것처럼 내재되어 있는 욕망의 근원을 알기에 해갈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글로 쓴 사진들을 다시 이미지화하면서 나도 그들의 이유있는 행동에 간접적으로나마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나는 그저 단순히 사진에서 그리고 현재의 구체적인 흔적에서 내가 이중으로 매료되었던 것들을 탐색하여 하나의 텍스트 안에 모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173쪽
소중한 순간들.
그녀의 시간은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탁월한 기록을 보여준다.
<사진의 용도>라는 제목이 주는 중화적인 느낌은 아마도 그녀의 예민하고 독특한 감수성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으면서 언어가 언어를 은근히 스토리텔링하듯 써내려가기 때문일까.
이 책은 직접 글로써 소리를 만들고, 형상을 만들고, 색깔과 냄새를 빚어냄으로써 사진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무엇이 선명해지는걸까. <사진의 용도>...읽어보면 나타날 것이다.
#남자의자리 #사진의용도 #세월 #진정한장소 #빈옷장 #아니에르노 #아니에르노시리즈 #1984북스 #1984books #리딩투데이 #리투지원도서 #리투신간살롱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