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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취향 ㅣ 채석장 시리즈
아를레트 파르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평점 :
"진실의 작은 조각들이
지금 이렇게 아카이브에 좌초해 있다."

아카이브 취향
아를레트 파르주 ㅣ 김정아 옮김 ㅣ 문학과 지성사
채석장 시리즈 중 단연 돋보이는 디자인과 컬러감을 과시한 '아카이브 취향'은 표지만큼이나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카이브라는 단어는 나에게 굉장히 건조한 매듭이었다. 들어서 알고 있던 단어, 그 첫인상은 더미처럼 쌓인, 방대한, 묶인, 옛 문서들을 디지털화한 작업으로 저장한 형태라는 거리감있던 것이었다. 나와는 상관없을, 내가 살면서 접해볼 일 없을 그런 전문학사적이고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제 몫을 다해 취급할 미완성의 고문서들이란 분야로 세기를 정리할 그런 역사의 매듭이었다.
그런데, 파르주라는 역사가의 신념과 아카이브를 버무리는 섬세한 터치와 영감들은 나 스스로가 머리 숙이게 했다.
독자로서 이런 감동에 다다르니 결국 내가 딛고 섰는 세계가 보인다.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이 공기의 흐름이 뭉쳐 엉겨있던 매듭을 풀고 가뿐 숨통을 튀어주는 열린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파리라는 공간, 아스날 도서관에 잠자고 있는 무수한 아카이브 문서들은 지금도 누군가의 순길이 닿아 활활 타오르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며 잠자고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격동의 세기에 파리라는 민주적이고 자조적인 도시에서 민초들이 일상을 전투처럼 살아가던 그 날들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죽은 역사의 한 페이지다.
여성의 삶, 노동자, 범죄자, 장애자, 취약 계층의 세련되지 못했던 그들만의 투쟁, 등등이 아카이브 형사 사건에 들어 있다. 그리고 좌초된 문장들로 침묵하고 있다. 두터운 방화 유리벽에 눌려 들리지 않는 공허한 울림들 같다.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하는 바람으로 잠자고 있을 그런 목소리와 문장들.....
이들을 대하는 역사가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시 말해서 아카이브 취향이 어떠하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대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카이브 취향'은 이 부분을 강조한다. '수집 단계'에서 저자의 목소리는 포장하지도 말고, 자의적이지도 말며, 독선과 독단적이지도 말기를 말이다.
얼마나 감동스러운 철학사관인지.
이는 아카이브 취향 뿐 아니라 나 자신의 타인의 삶을 대하는 자세로도 빗장을 걸게 만든다.
낯설고 어려운 아카이브 취향을 따른 초행길이었지만, 인상 깊었던 역사자 파르주와의 만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