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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자본>에 대한 노트 + 아카이브 취향 + 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 - 전3권 ㅣ 채석장 시리즈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알렉산더 클루게 저자, 김수환.유운성 역자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평점 :
<자본>에 대한 노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ㅣ 알렉산터 클루게
김수환 ㅣ 유운성 옮김 ㅣ 문학과지성사
“결정했다, 마르크스의 시나리오에 따라
『자본』을 영화화하기로.
이것이 유일한 형식적 해결책이다. […]
제임스 조이스가 나의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주관으로 NEW 인문 에세이 ‘채석장’ 시리즈의 첫번 째 책,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화하려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작업노트와 끝내 미완성에 그친 자본의 기획에서 영감을 얻어 쓰여진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이라는 영화를 제작한 알렉산더 클루게가 제작한 동명의 소책자라고 한다.
<자본>에는 영화화할 수 있는 테마가 무궁무진하다(잉여가치, 가격, 지대).
우리의 테마는 마르크스의 방법론이다.
-65쪽
철학사상으로 텍스트로만 읽히고 사고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그저 평면적인 도구로 접근가능하다는 한계 안에서 회자되었다면 장르를 초월해 예술로 파고들어가 영화로 제작되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만난다는 상상은 예술가들을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들었을까.
에이젠슈테인이 만들려고 했던 <자본>은 결과적으론 투자를 받기 쉽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은 그 제작과정의 노트만 남아있는 상태다. 에이젠슈테인과 클루게의 합작이 아니었다면 이 방대한 분량의 초안 노트는 오늘날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자본』을 영화화하려 한 에이젠슈테인의 원대한 계획을 상상의 채석장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신은 거기에서 파편들을 찾을 수 있지만, 또한 찾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만들어진 영화들을 비판한다.”
-161쪽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하나의 고정관념적 틀을 깨고 새로운 형식이 창조되기까지 무수한 반복을 해왔고, 실패와 성공의 반성을 기반으로 이 미완성의 기록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모방과 창조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이 실패한 기획이 채석장에서 주울 수 있는 수많은 영감 덩어리 그 자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작과정에서 이미 혁명은 지나갔고, 시들해진 열기 속에서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노예 거래와 아동 노동이 추방과 아우슈비츠로 대체되는 과정을 거치며 마르크스 사상의 입지가 변화된 만큼 그들의 고민도 "이데올로기적 고대"가 되어버린 전령들을 어떻게 현대적 관점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매달려야만 했을 것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전함 포템킨>과 <10월>의 영화제작으로 성공을 거둔 감독이었다. 그는 특히 <자본> 제작과정 중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로부터 상당한 영감을 받고 있었던 듯 하다.
앞서 언급했듯 <자본>이라는, 불가능한 듯 보이던 텍스트를 영화화한다는 기획 자체와 이를 조이스의 방식으로 제작하려 했던 구체적인 기획들은 신선한 변증법적 몽타주였던 것 같다.
그 후로 2년 정도 구체적 작업에 착수한 에이젠슈테인은 <10월> 영화 제작 당시 거대 자금을 투자 받았던 일을 경험 삼아 <자본> 역시 그러하리라 여겼지만, 투자처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에이젠슈테인이 바라본
<자본>은 ─공식적으로─제2인터내셔널에 헌정될 것이다. 모두들 분명 ‘만족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 걸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타격으로 이보다 더 파괴적인 공격을 생각해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 측면은 조이스에게 헌정한다
-64쪽
그렇다면, <자본>의 기획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에이젠슈테인이 공들였던 기획은 파격적이었다. 평면적 사유의 과정을 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했다.
여섯시간 러닝타임을 예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몇날 며칠을 상영하려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기존의 미장센의 고루한 형식에 기초하기 보다는 좀 더 감각적이고 은유적으로 영화사물을 담아내려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듯 하다.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감각적 몽타주, 그리고 <10월>의 성공적 제작기반, 이들을 도합해 개념적이고 지적인 영화, 사유의 과정을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발견을 실현하려 했던 것 같다.
<자본>은 새로운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탄생할 것이었다. <율리시스>와 흡사한 형식틀을 가져갈 것이었다.
논리적이기 보다는 이미지로 연결된 개념연상, 암시, 은유, 담론적, 문학의 형태를 희석해 노동자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교리문답 형식, 평범한 일상대화 질문으로 시작해 점증적으로 형이상학적 고차원의 질문까지 소화해 낼 것이었고, 이 때 수프 한 그릇에서 출발해 무의식적 연상 작용이나 흄 사상, 혹은 프로이트의 자유연상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실험해 보는 방식을 고민했던 것 같다.
장면이 진행되는 내내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남편을 위해 수프를 끓이고 있다. … 세번째 부분에서 연상이 그녀가 요리에 쓰고 있는 후추로 옮겨간다. 후추, 붉은 고추, 악마의 섬, 드레퓌스, 프랑스의 쇼비니즘, 크루프의 손아귀에 있는 <르 피가로>, 전쟁, 항구에 침몰한 선박들. … 침몰한 영국 함선은 냄비 뚜껑으로 덮는 편이 좋을 것이다.
-57쪽
에이젠슈테인의 <자본>에 대한 열정을 그러므로 단지 ‘자본’을 '영화화’하길 바랐던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그것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클루게가 바라보는 에이젠슈테인에 대한 관점은 이러하다.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이런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파편들과 보물들 그 자체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에이젠슈테인이 노트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들이 오늘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이 파편들이 중요한지 알아보는 일도 흥미롭다. 그의 새로운 내러티브 전략은 사물론과 ‘사물의 전기’ 개념, ‘파사주 프로젝트’와도 병치되며, ‘사물로의 전환’을 이끈 동시대의 이론들이나 미술관 설치와 같은, 영화 바깥의 새로운 존재 형식들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
이 말은 처음엔 너무 낯설고 어려웠으나 곧 통사적으로 살펴보니 오늘날 에세이 형식이나 다큐멘터리 형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자신을 매혹했던 <율리시스>』의 내적 독백을 사용해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는 에이젠슈테인의 생각은, 요란한 농담이거나(스탈린이 바로 그렇게 반응했는데, 그는 에이젠슈테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오늘날 예상치 않게 긴요해진 선지적 예견처럼 보일 수 있다.
-7쪽
“옛적의”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찍었다.
새로운 영화는 여러 사건들로부터 하나의 관점을 조합해낸다.
-59쪽
언어적 완성이라 단정지었던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항하여 새로운 시각 접근을 시도한 에이젠슈테인의 예술혼은 <자본>의 언어적 전달방식을 탈피한 영화라는 또 다른 차원의 이미지적 전달을 고민한 최고의 발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초기 이데올로기적 과도기를 거친 인류의 사색들이 어떻게 변모하여 오늘날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인지, 새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영향력에 대하여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다가서지 못했던 아니 감히 접근 조차 해볼 수 없었던 전문적이고 특수한 분야이지만 채석장을 통해 모험과 도전에 이르렀고 사고의 변증법적 결과를 스스로 증명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에이젠슈테인과 같은 위대한 거장을 만났던 좋은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