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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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진심이란 단어는 입에 담으면 담을수록 본래의 뜻과 멀어진다. - 7쪽 소설 첫문장

언론사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밥의 질 전쟁이다. 비단 언론사에서 뿐이랴......

<매일한국> 신문사에서 이례적인 인턴 채용을 통해 입사한 여섯 명의 수습인턴 중 김수연이라는 인물이 문제가 된다. 명문대는 고사하고 인서울 출신도 아닌 지방대 출신에 나이도 꽉찬 아홉수라 이번 채용 모집이 그녀에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수연은 세상 열심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커버하려고 어떻게든 발로 뛰는 그런 그녀다.

디지털뉴스부 기자 김대혁은 인턴기자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김대혁의 직장 생활이 그닥 만족할만한 처지는 아니다. 위에서 쪼이면 쪼이는대로 굴리면 굴리는대로 낚시기사나 돌리면서 우라까이나 할 짓인 포지션이다.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대혁이었다. 수연은 그런 그를 높이 샀고, 밑에서 일을 배우면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도 넌지시 비춘다. 수연은 계약직과 인턴직 뺑뺑이를 5년이나 굴러먹은 불안정한 생활에 목적도 목표도 잃어가고 있었다.

우연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인턴기자들을 등 뒤로 한채 국장은 인턴채용에 대한 위험 수위의 발언을 대혁에게 나불댄다. 수연의 활약이 두드러지지만, 그녀의 낮은 학벌 수준과 나이가 못마땅해 정규직 채용 전환에 태클을 건다.

수연을 비롯한 인턴기자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그 대화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선배 기자의 개인사정으로 그날 밤 부당한 당직을 대신 맡았던 수연은 자신의 유서를 남긴 채 <매일한국> 5층에서 뛰어내린다.

No Pain No Gain - 이 땅에서 희망고문이자 환상이다.

꿈을 미끼로 유혹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나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세상의 벽 앞에서, 생존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숟가락 색깔이라는 불편한 진실도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패는

오직 성공한 자들이 말하는 실패다.

실패자들이 말하는 실패에 귀 기울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실패는 세상에 수많은 사소한 실패 중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침묵주의보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말 그대로 주의보다. 침묵하는 자와 침묵을 깨는 자들의 주의보다.

수연이 남긴 유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소설인데 소설이라 가르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쳐진 문제투성이와 나 개인이 홀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있을 수 있거나 있었던 일이 아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라는 사실. 작가는 이 곪아 있는 상처들을 언론과 정치 무대를 엮어 갑과 을의 갈등과 불공정한 제도, 잃어버린 신념과 퇴색해 가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처럼 소설이 아닌 듯 리얼하게 그려낸다.

우리와 상관없는 곳에서 우리가 모르게 얼마든지 우리를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무섭고 슬프다.-164쪽

수연의 죽음을 둘러싼 관계 속에서 각개들은 그들의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한다.

누구보다도 대혁은 수연의 죽음을 미끼로 부서를 옮겨 오너의 뒷처리를 해주는 일을 맡고, 음모와도 같은 수연의 죽음을 은폐할 찌라시를 뿌려대는 일을 하게 된다. 대혁은 주춤주춤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한다. 밥의 질 때문에 섣불리 지를 수 없는 자신의 숨겨둔 무기와 사상.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수연의 죽음을 기회로 포착, <메일한국> CEO자리에서 물러난 오너.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인간사야.-104쪽

누군가에게 규칙을 강요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죄책감은 더 이상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을 안겨주며 규칙에 순응하게 만든다.-224쪽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을 놓고 갈등하는 대혁의 현실이 나의 현실이다.

어떤 선택이 정의로울까. 누구를 위해 정의로울까. 무엇을 향하여 정의로울까.

한 가지 사상과 한 가지 옳고 그름을 놓고 고민할 때는 쉽고 곧은 의지의 결단이 가능했다. 그런데 관계란, 사회란 그런 것이 아니기에 더 착잡해지는 것 같다. 결론은 열려있다.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모두가 살아있는 물음이고 진행이기 때문이다. <침묵주의보>는 화제의 드라마 <허쉬>로도 각색되어 방영 중이다.

묵직한 울림을 가지고 소설처럼 웰메이드 드라마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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