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은 이원론적 사상에 대해 나눴다.
세계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 갈라졌고, 그러므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모든 흐름이 빠르게 굽이쳐 왔다. 사상에 따라 이상적인 명분을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르고, 이익 편취도 정의롭게 자행되었고, 상대를 깔아뭉개고 나를 세우는 차별을 일삼아 왔다. 언제부터 이런 일들이 당연시되었을까...... 돌이켜 봐도 그 시초를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채사장님이 처음 서두부터 강조한 것이 진리에 대한 정의로운 사상 파헤치기다. 탐독의 깊이를 지나 중독 수준으로 빠져들고 보니 방대하나 절대 얕은 지식이 아니다. 세계 속의 나를 갈고닦는 초석인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더 나아가서는 신비에 예속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방에 기술하고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사상체계는 말 그대로 혼잡 그 자체였는데,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로 구분되는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었다.
마치 유일신을 믿으면서도 징크스와 같은 미신들에 연연해 하는 것처럼.
고대 시대, 절대주의 속에서 꽃 피었던 플라톤과 교부철학, 차츰 합리론이 발전해 왔고, 혁명사와 전쟁사를 거쳐 발전한 상대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하며 스콜라철학과 이성보다는 경험에 의지하는 경험론이 절대 확장되는 추세였다. 회의주의는 미미했다. 보편적 진리나 진리에 이르는 방법을 모두 거부했었으므로 당대에 활발히 펼칠 수 없던 이념이었다.
과학의 세계는 상대주의, 즉 인간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상대성 이론이라든지, 양자물리학,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론을 증명하고자 활발히 연구하였고, 이런 변화의 물결은 예술 속에도 파고들어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개인의 의식을 보편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종교 부분은 힌두교와 이슬람교도 다뤄주고 있어 굉장히 흥미롭다. 지대넓얕2편은 쉽게 읽히지만 그만큼 알아봐야 할 과제들을 산더미처럼 준다.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세계를 누비며 우주를 꿈꾸기란 만만한 삶이 아니다.
이토록 거대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인종과 사상, 문명의 이기와 삶, 죽음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대화가 될 수 있도록 거침없는 입담으로 자리 잡으려면 역시 나의 알을 깨뜨려야 한다는 결론에 자리한다.
현실 너머를 마무리하면서 절대성과 상대성, 더 나아가 다양성에 대해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지식 여행이 이젠 제로 편을 향하고 있다.
초월해 사는 맛을 알아보고 싶다고 해야 하나.
나와 분리된 또 다른 그곳엔 무슨 이야기들이 살고 있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