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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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CIRCE

매들린 밀러

장편소설

 

이은선 옮김

이봄

 

                            

매들린 밀러 작가의 두 번째 작품 <키르케> 완독

불멸의 신들에겐 시간이 무의미하겠지만,

외딴섬 '아이아이에'에 유배당한 키르케가 하급 여신의 비주류 운명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선택한 '마녀'를 그려낸 대서사.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신이라니.

122. 헤르메스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섬세한 내면 묘사는 캐릭터 하나하나마다 버릴게 없이 소중하고 애틋해 할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이었다.

긴 이야기 속에 다양한 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낯설지 않고 새롭다.

처음엔 이야기의 속도가 더딘가 싶어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를 휘돌아보니 작가가 메시지의 본론을 터놓기까지 이래서 뜸을 들였구나 싶은 공감이 갔다. 작가에게 있어 키르케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비주류 여성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롤 모델인 것이다. 작가는 키르케를 통해 고대로부터 현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키르케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유독 인간을 가까이 느끼는 키르케를 향한 헤르메스의 눈은 정확하다.

우연히 어느 날, 프로메테우스를 만난 키르케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드러냈고, 인간 글라우코스에게 감정을 드러내 보이나 결국 배신을 당하고, 그럼에도 인간을 향한 끝없는 프러포즈는 키르케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한마디에 키르케는 아이아이에 섬으로 유배를 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외롭고 고독한 마녀가 된다. 작가가 주는 유배지의 지도가 퍽 인상적이다.

철저히 고립된 듯 보이면서도 늘 감시를 당하고 있고, 낯선 이들의 방문은 자유로워도 맞이하는 키르케의 입장에선 방어막이 없는 당하는 여신이다. 그 낯선 대상이 신들이건, 절대적 권위이건, 애정을 갖던 인간들이건 아무도 혼자 남겨질 키르케가 강간과도 같은 치욕스러운 고통을 어떻게 밀어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즐기고 있을 뿐.

그래서, 키르케가 마녀로 지목된 본연의 힘을 직접 키우기 시작하는 거다.

이 부분이 너무 매력적이다.

키르케는 혼자다. 아이아이에 섬에서 보내는 거의 평생의 시간 동안 자신의 자유로움을 누리며 마녀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익혀나간다. 경험과 지식, 삶의 방식을 걸맞게 익혀 나가고 배우며 어떤 선택을 내리던지 익숙하게 몸에 새긴다.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의 만남은 흔히 알고 있듯 몇 줄 안되는 그들의 평면적 거래 관계가 아니다. 애초에 오디세우스가 전쟁과 영웅으로서 명예를 남길 신으로 예정되었다면 키르케는 단순한 오디세우스의 들러리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키르케가 오디세우스를 만나는 동안 어떠했을지 마녀의 지위를 갖는 그녀만의 생존방식에 대해 주문을 걸어준 것처럼 표현했다.

 

               

헤르메스, 다이달로스, 오디세우스, 그녀의 아들 텔레고노스, 텔레마코스.

불멸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아들의 죽음 이후 키르케를 붙잡는 신에 대한 환멸의 고통은 그녀가 운명을 선택하게 만든다.

                           

파도 속에서 헤엄친다는 게,

흙을 밟고 걸으며 그 느낌을 감상한다는 게 그런 뜻이다.

살아 있다는 게 그런 뜻이다.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가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500.

인간이기를 바라고 기꺼이 선택한 키르케의 의지적 삶은 혼자서 어떻게든 삶을 일궈나가는 오늘날의 여성상이기도 하다. 고전과 현대 감성을 잇는 중간다리 역할이 매들린 밀러 작가에 의해 훌륭하게 그려지고 있다. 왜 이 소설의 키워드가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도 포함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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