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나의눈부신친구> 작가의 신작이다.

원작 표지는 어떤지 자못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표지는 굉장한 볼륨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어른들만의 위험한 세계. 농염한 자태로 은밀하게 수작을 부릴 것 같은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누워있는 소녀의 뒤태 너머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는 시사회 상영을 보는 듯 노란 조명으로 크게 부각시켜 주는 구성도 맘에 든다. 그런 볼륨감에 액면 그대로 노출되는 소녀라니. 방어막이 없다.

오래된 앤티크 타자기로 '타타타탁 타타탁 탁' 타이핑 쳐 올라가는 글자들의 소리가 또박또박 공포처럼 스타카토로 강인하게 박혀든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 인트로니까.

뚜껑을 열어보면,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농도 짙은 전형적 관계의 불편한 진실들.

 

 

작가가 태어나서 떠나기 전까지 살았을 나폴리는 어떤 곳일까, 생각해 본다.

엘레나 페란테의 글 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작은 항구 도시 나폴리에서 가고 오는 사람들의 숱한 만남과 이별 속에서 기약 없이 맺어졌을 서로의 가벼운 안녕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페란테가 보고 자란 나폴리가 준 어떤 기억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깊이 봉인된 채 각인되어 조반나, 빅토리아, 줄리아나, 안젤라, 코스탄차, 마르게리타, 넬라 같은 여성의 정체성을 여러 목소리로 대변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여성 인물들이 때로는 세련되고 낯선 향기의 도발적인 것들에 반감을 사기도 하며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성과 남성의 충돌을 통해 중산층의 돌파구를 찾아내게 만든다.

13살 소녀, 조반나.

나는 조반나를 통해 사춘기 성장통을 요란하게 앓는 그녀의 세상 보는 눈을 경험한다. 페란테의 한 부분이었을 조반나의 잔혹동화 이야기는 한편으론 나에게 시험대와 같았다. 나폴리와 비교하면 내가 나서 자란 유년시절의 고향과는 많이 동떨어진 정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란테가 보여주는 거칠고 직설적인 그들의 소통 방식과 사랑법에 정통할 만큼 나의 문화적, 문학적 배경지식은 없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사랑이란 뒷간 문에 달린 유리처럼 탁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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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더라도 사랑을 대하는 정서는 누구나 같다.

조반나가 은밀한 것을 은밀하게 목격한 것은 식탁 밑에서 엉겨 붙은 엄마와 마리아노 아저씨의 다리였다. 눈빛이 아닌 다리로 주고받는 불경스러운 노선을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조반나는 그렇게 왜곡된 사랑관을 증오하며 어디서부터가 어른들의 삶이라 할 수 있을지 의심하며 몸소 그 거짓되고 위선적인 경계를 실험한다.

정신적 지주였던 지성적이고 냉철한 아버지마저 알고 보니 코스탄차 아줌마와 15년 가까이 불륜 관계를 가져온 저속한 한 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더 삐뚤어진다.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조반나의 내적 방황을 페란테는 빅토리아 고모를 통해 변화시켜 나간다. 악의적이고, 무식하고, 통속적인 빅토리아의 성격은 반감을 사기도 하지만, 조반나의 반항적이고, 충동적이고, 때로는 성적으로 폭력적인 언행을 갈무리하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옳은 것이 무엇이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 의미를 잃어버린 조반나의 오랜 방황은 로베르토라는 줄리아나의 남자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관계를 통해 위험하게 튀어 나간다. 로베르토와 복음서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인간을 버린 무책임한 신을 나무라고 질책하는 조반나의 말들은 혼탁한 어른들의 세상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내침 같은 것이었다.

삐뚤어지면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까.

조반나는 그 경계를 포장하지 않고 그냥 보여주면서 질주한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는다. 떠난 아버지를 끝까지 놓지 못하는 엄마의 괜찮다는 위선도 사랑이고, 로베르토와 줄리아나의 마음에 빚진 관계도 사랑이고, 빅토리아 고모와 마르게리타 아줌마의 한 남자를 나눠가짐도 사랑인 거고, 둘 다 사랑한다는 아버지도 사랑이라 인정해 주는 거다.

 

 

그렇게 조반나는 어린 티를 벗어버린다. 일탈에 가까운 행동도 더러 있지만, 그녀만의 규칙이 있고, 경계가 있다. 아닌 것은 아니고, 욕구 질은 욕구질인 것에 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해결하는 조반나의 행동이 그렇다고 비난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지만 나의 유년 시절 정서상 경험해 보지 않은 욕구들과 행동이라 조반나의 무모한 일탈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와 상실감은 살아있는 유령 같아서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모아진다.

 

조반나의 이유 있는 일탈은 여기까지다.

그녀가 다시 잡은 사춘기 방황의 마무리는 자신의 첫 경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에 있었다. 이 또한 나의 정서와는 다르지만, 조반나가 여성이 아니고 나폴리의 남성이라면 그리 크게 놀랄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큰 사람, 아버지 같은, 로베르토처럼 남성이고픈 조반나의 의식은 '성'을 사랑과 동등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처럼 첫 경험을 스스로 결정해 새로운 가치관의 기준점이 되었다.

페란테의 글 쓰는 힘은 나폴리 어디쯤에서 나오는 걸까.

페란테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정확한 순간에 질주하는 야생 동물의 본능처럼 거침이 없다. 그리고 늘 상승하는 고뇌와 해석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읽고 나면 항상 쾌감에 전율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반나는 이다와 함께 베니스로 향한다. 어른이 되기를 바라건대 나폴리를 떠나 베니스로 가는 것이다. 새로운 여정에 한 뼘 더 성장하는 조반나를 상상해 본다.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특별한 어른이 되기 위해 두렵고 캄캄했던 터널을 지나 몸을 싣고 내달리는 다음은...페란테의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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