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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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은 처음이다.

여름을 지나가는 지금 모든 이의 여름이라는 해시태그 위에 자신의 삶을 기록하거나 타인의 삶에 공감하거나 그것을 가져오려면 꾹 눌러 어떤 것이든 표시하고 상태를 남긴다.

 

<여름을 지나가다>는 워낙 많은 이들에게 읽혀오는 소실인지라 내용을 해부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느낀 점은 ......

 

우선 그에 앞서,

책을 펼치자마자 맨 뒤쪽으로 옮겨 가

조해진 작가님의 초판 작가의 말을 읽어보았다.

 

이제 떠나보낸다, 나의

그리고 그들의

여름, 그 어둡게 반짝이는 조각들을,

푸른 시간의 테두리를.

p.229

 

 

나는......

테두리......

푸른 시간의 테두리 위에 잠시 나의 시간을 내려놓았다.

반짝이는데 어둡다라니......

조각들인데 테두리라니......

그리고 떠나보내는데 푸른빛의 시간이라......

 

작가의 중심을 생각해 보고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개정판 작가의 말로 넘어왔다.

 

초판 '작가의 말'에서 저는 타인의 고통에 쓴다는 것이 공감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고 적기도 했는데, 걱정하는 그 마음은 여전하지만 2020년의 저는 그런 걱정을 뛰어넘는 곳에 문학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름'은 기댈 곳이 없는 청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가장 에너지가 넘치지만 열매는 아직 얻을 수 없는 저마다의 여름을 지나가는 청춘들에게 이 소설을 안부 인사처럼 전하고 싶었던 작은 바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밀도로 진심입니다.

p.225

 

 

작가의 말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사랑과 진심은 오늘의 해시태그 위를 집착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없이 따뜻하고 힘이 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청춘의 헛헛한 삶의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과정을 '테두리'로 경계 짓는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내가 주목했던 작가의 문장들은 그러한 '테두리'였고,

깊은 공감을 품으며 못다 한 나의 여름 이야기를 반성했다.

삶과 죽음이 매일 매 순간 순서와 순리를 달리하는 난잡한 사색 속에서 결국은 여름을 내줘야 하는 나의 정면승부는 어떤 빛깔의 나이테를 두른 테두리었던가.

그리고 지금 2020년의 8월은......

또 어떠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

 

테두리

병원 응급실에서부터 35년 넘게 세계의 시계에 순응해 온 거울 속 민의 얼굴이 고요한 물속에 잠긴 듯 테두리 없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p.8

 

- 흐릿한 거울 속에서 흐릿한 자신이 흐릿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흐릿한 생애가 상상됐다. 가령 일정 기간 살다가 미련 없이 죽고 그 죽음에서 빠져나온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그러니까 일생이란 개념으로는 규정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끊임없는 반복. 그런 식의 삶은 기차 같은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p.9

 

테두리

분향소 앞에서도 그들의 사진 촬영은 이어졌다. 여기에도 누가 사나 봐. 도심 한복판에서 캠핑 같은 걸 하려면 대체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걸까? 어쩌면 그들은 신기해하며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몰랐다. 테이블에서 서명을 받던 두 명의 젊은 남자들은 팔짱을 낀 채 무력하게 관광객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인파에 가려진 분향소는 반투명한 테두리의 공간처럼 사라지고 나타나길 반복했다. p.29

 

- 가난은 갑자기 쌀이 떨어지거나 전기가 나가는 식의 상투적인 장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고 구체적으로, 저마다 다른 형태로, 그러나 비참함을 느끼게 할 만큼은 충분히 강렬하게 일상과 일상의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드는 것이다. p.39

 

테두리

방문을 연 순간 방 한가운데 정자세로 누워 있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 놀란 쪽은 할머니가 아니라 민이었다. 중개 사무소에 등록된 집이라 미리 집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는 민의 터무니없는 해명에도 그녀는 외려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손님이 왔는데 내놓을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웃어 보일 때는 입가 주름이 유독 깊이 패었다. 삶의 테두리가 고요하게 허물지고 있는 노년의 여성을 보면 늘 그랬듯, 민은 반사적으로 종우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p.68

 

테두리

물기가 빠진 7월의 거리는 내리비치는 직선의 햇살 속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흐릿함 따위는 거부하겠다는 듯, 풍경은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 그저 정연하기만 했다. 겨울쯤에 커피숍을 하나 차리려 한다고, 아이스크림 기계도 커피숍에 들이기 위해 미리 사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아까워 6월부터 휴무일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다고, 여름이 끝날 때까지만 도와 달라고, 깔고 앉은 전단지의 끝을 접었다 펴며 그녀는 차근차근 말을 이어 갔다. p.78

 

테두리

어디 상한 데도 없고 인테리어도 깨끗하고, 너무 맘에 들어요. 내년에 전세 계약 끝나면 바로 우리 부부가 들어가 살려고요.

묻지도 않은 것을 일러 주며 노부인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정성스럽게 화장한 얼굴이 화사했고 말투는 상냥했다. 종우의 어머니나 은희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지만 삶의 테두리가 무너지는 사람 같은 인상은 없었다. 특별한 사고만 없다면 노부인은 분명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인간적인 임종을 맞게 될 터였다. p.151

 

테두리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픈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누군가 죽은 자리에서 누군가는 태어나는 방식으로 무심히 순환하며 평형을 유지하는 이 세상에서 꿈에서 본 죽은 노인을 기억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러나 민에게 그렇게 일러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p.188~189

 

테두리

 

<여름을 지나가다>를 읽으며 계속 맴도는 생각은 이것이다.

흐릿한 듯 선명해지고 반투명한 듯 다시 일그러지다 어느 순간 반듯하게 둥글거나 반듯하게 모나거나... 그러다 다시 모호하게 경계를 잃어가며 섞이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듯 선명하게 선을 밟고 넘는 변증적인 삶의 애착과 순환.

 

낯설면서도 익숙한 듯 불편했던 나의 부끄러움과 치부를 굳이 애써 기억해 내며 주인공들에게 투영된 내 삶을 어루만지듯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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