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6층 비구디 할머니 (반양장) ㅣ 미래아이 저학년문고 25
델핀 페레 지음,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양진희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0년 2월
평점 :
156층 비구디 할머니
델핀 페레 글 / 세바스티앵 무랭 그림 / 양진희 옮김
미래아이 스물다섯 번째 저학년 문고

밤 풍경이 더 화려하고 예쁜 뉴욕의 상류층 거리가 배경입니다.
156층짜리 회색 빌딩이 우뚝 솟고 노란 택시가 교통체증에 도로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주변에 근사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바쁜 아침의 거리를 상징하는 듯 반듯한 차림새의 도시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움직입니다.
비구디 할머니는 나이가 아주 많은 어르신이지만 매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시간을 소비하는 행복한 할머니인 것 같아요. 프렌치 불도그 알퐁스와 언제나 동행하는 삶은 이별을 그려볼 틈이 없었을 듯하지요.
"볼에는 베개 자국도 보이지 않았어요."
하하하!
너무 유쾌한 표현이지 않나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랍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구사하는지, 아주 많이 수다스럽고 날렵하게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는 오지랖의 경쾌한 비구디 할머니를 최고로 상징하는 말인 것 같아요.

비구디 할머니의 하루는 어느 여왕님의 일상처럼 모닝커피로 시작해 앞머리에 뽕 넣으러 들른 헤어숍에서 셀럽들의 최신 이슈를 듣기도 합니다. 공원에 이르는 산책로를 코스로 한낮의 따사로움을 맘껏 즐기는 동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는 듯 알퐁소와 함께 합니다.
전형적인 부유층의 은퇴한 뉴요커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답니다.
비구디 할머니~~ 너무너무 귀여우셔요^^
156층은 내려갈 때와 올라갈 때의 기분이 다릅니다.
비구디 할머니는 156층의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은 시간이 더디 흐릅니다.
내려갈 때는 쏜살같더니......알퐁소도 힘겨운 오름길이랍니다.
인생의 최고 자리까지 오르기는 어렵지만 내려가기는 쉽듯이 말입니다.
이 높디높은 156층짜리 회색 빌딩의 이름은 그래서.
파라다이스랍니다.

"하지만 알퐁소는 나이를 많이 먹었어요."
아......이 불길한 예감. 어쩔까요......
"너무 늙어서 힘들었는지,
어느 날 아침 알퐁스는 카펫 위에 길게 눕더니
마지막 숨을 내쉬었어요."

얼마나 많은 이별들이 비구디 할머니의 나이 듦을 깊은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요...... 짐작이 갈 것 같아요. 때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연륜이 쌓여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선물을 받지만 마음을 다치는 이별과 같은 감정만큼은 언제나 처음과도 같고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인 듯합니다.
특히 그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너무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앞으로는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 그래서 할머니는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갔어요.
할머니의 은둔 생활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안전하게 숨어서 사계절을 맞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점점 잊어갔지요.
심지어 비구디 할머니 자신의 얼굴조차도 말입니다.

창문 청소를 하려고 곤돌라를 타고 오른 156층 빌딩의 바깥에서 그 사람은 할머니를 향해 계속해서 무언가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두터운 강화유리에 박혀 사람의 소리를 틀을 수가 없답니다.
문득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
나도 비구디 할머니처럼 마음의 벽을 굳게 막아 놓고 내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설령 죽음이나 이별 정도의 크기는 아니어도 타인의 관계와 어울림을 벗어난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겉돌기 식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도 저도 아니면 비구디 할머니의 156층 보다 더 높은 곳에 꿈의 집을 짓고 나를 너무 채찍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그 사람은 비구디 할머니를 갇힌 방에서 끌어내 줍니다.
의지했던 알퐁소를 상실했던 할머니의 외로움과 이별의 아픔을 상처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다리 놓아준 그 사람~~
특별하거나 엄중하거나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일상적인 배려와 관심,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고마워요, 고마워.
이건 아주 중요한 거라고요.
내가 젊은이랑 같이 내려가도 될까요?
오늘 만나야 할 친구들이 많아서..."
정말 비구디 할머니의 유쾌한 깨달음은 나를 한없이 작고 작은 말로 너그럽게 위로해 주네요. 다시 용기 내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 관계들을 기쁨으로 간직하며 누구보다 자신에게 괜찮다 말해 줄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