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휩쓸고 간 도시 부림지구
그곳의 지하 벙커X에 사는 생존자들의 이야기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제철단지로써의 구실도 잃어버리고 대지진으로 지역과 사람들이 모두 오염되었다. 적어도 정부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에 따른 시스템 메뉴얼대로 부림지구를 원천봉쇄한다.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지역은 오염되었고 남은 자들도 오염덩어리들일 뿐이다.
이 오염덩어리들은 열 명 남짓.
부림에서 나고 산 그녀, 유진을 중심으로 지하에 버려진 관광버스 내부를 벙커 삼아 X라 칭하고 함께 살아나간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재난이 닥치고 삶의 모든 가치를 상실한 남은 자들의 다양한 생존기를 기록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진을 포함한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인간의 다면성을 들어내는데 입체적인 효과를 충분히 주고 있지만 이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기대하는 방향은 내게 조금 힘겨웠다.
정부의 조치에 따라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로부터 최소한의 식량만을 공급받고 있지만 이도 곧 여의치 않다. 생존자들은 벙커를 벗어나려면 몸에 생체인식 침을 삽입하고 통제 받아야만 가능하다.
독자들은 소설의 이런 분위기를 디스토피아라 부른다. 극한 상황도 있거니와 혼란을 틈타 사람들의 본성이 어둡고 부정적으로 와해되고 변질되는 균열과 괴리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됐든 생존자들은 하나 둘 벙커X를 떠나기도 하지만 유진은 끝까지 부림지구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 그곳이 그녀의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떠난 자들은 N도시의 삶을 선택한다.그러나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남는다는 것은 정부 즉 강한 자들로 부터 소외되고 오염된 자로 각인되는 것이며 나의 모든 것을 통제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떠난 후의 삶 역시 통제받는 형식은 동일하다.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은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가혹한가"
<부림지구 벙커X>는 내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요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불안한 생각과 돌발적인 행동을 충동적으로 부추기거나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반발하게 만드는 교란적 수단으로 삼는 행태가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관계적 작용 전반에서 보이고 있다.
이런 사회적 공포가 만연한 시기에 강영숙 작가의 <부림지구 벙커X>를 읽어보며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내 안의 재난과 공포, 나의 의지적 선택과 삶의 주도적 결단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조건을 건다면, 반드시 타인들과 함께 생존을 넘어 공존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