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작품의 단편 소설집으로 엮인 <나의 스파링 파트너> 안에는 특히 아픈 손가락처럼 다가온 나의 모습이 있었다.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이 그러했다.
맏딸로 자란 나는 언제나 어깨가 무거웠고, 그런 만큼 빨리 성숙하져야 했던 가정 환경이 있었다.
"리액션"
난 살아가는데 지장 없을 만큼 의사표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감정 표현의 비율이 어느 정도여야 적당하다는 말이지?
정말 내가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만큼 수준 이하인 걸까?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내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감탄사를 넣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봤다.
하지만 그 결과, 리액션이라는 건 하품처럼 저절로 나와야 하지 억지로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의도를 갖고 감탄사를 뱉는 순간, 감정은 바로 변질되고 온몸에 소름만 돋았다.
다시 말해 내 안에 감정이 고여서 그것들이 차고 넘치면서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어야 하지 의도를 가지고 터트리는 건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p.71
나연이가 한없이 착하고 너른 마음으로 동생에게 배려하고 양보하며 무난하게 자라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해 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연이 스스로도 자신의 참 모습을 들여다볼 일이 없었고, 그런 나연이와는 정반대 기질을 갖고 있던 수아가 나연이와 함께 머물게 된 일을 계기로 자신의 내적 기질과 갈등을 일으키는 낯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연이의 장점이던 성격이나 행동들이 수아의 등장으로 인해 결점처럼 오인받는 상황이 벌어지자 나연이는 질투와 분노, 화라는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또 다른 얼굴에 불함을 느끼고, 자신을 오해하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꼭 나를 보는 듯 했다.
가족들의 상처주는 말들에 나연이가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내는 순간 어찌나 눈물이 흘러내리던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내 어릴적 모습을 회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토닥여야 했다.
엄마가 나연이를 와락 껴안으며 미안하다 말 할 때,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지 공감해주며 진심으로 나연이게게 사과할 때,
나의 가족은 나에게 그러지 못했음을 떠올리며 어릴적 나를 만났다.
비록 나는 그런 위로와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주인공 나연이와 나연이 엄마를 통해 감정을 몰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힐링이 되었다.
나의 스파링 파트너는 결국 나 자신의 아무렇지 않게 가라앉은 어두운 자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