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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년, 날다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2
고든 코먼 지음, 최제니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12월
평점 :
불량 소년, 날다
고든 코민 지음 / 최제니 옮김 /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62
세상에 영원한 악인은 없다!
학교폭력에 관한 유쾌한 엎어치기

"떨어진 기억이 난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완전한 공백 상태."
체이스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불안감에 눈을 떴다.
다시 마주한 세상은 급성역행성 기억상실증 그 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체이스가 지붕 위에서 떨어진 순간부터 말이다.
체이스 앰브로즈, 최고의 풋볼 팀 공격수이자 팀 주장이며 주 챔피언이라는 화려한 커리어와 동시에 학교에서 거침없는 사고뭉치, 묻지마 그냥 막가파, 악명 높은 최악의 일진이다.
그랬던 체이스의 머릿속이 지금은 텅텅 비었다.
오직 한가지 떠오르는 것이라곤 꿈처럼 현실처럼 기억의 경계를 허무는 어느 소녀의 얼굴뿐. 아무것도 체이스를 어두운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불량소년, 날다]는 학교 폭력을 겪으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함께 성장하는 청소년 학원 소설이다. 이 소설은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감정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작가의 시선이 개입하는 독특한 전개방식으로 그려진다. 폭력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반응은 어떤 것일까. 고든 커먼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이 물음은 상당히 심오하다. 체이스가 비록 과거의 악했던 자아를 잃어버렸지만 몸은 간헐적으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고 현재의 인간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선한 의지를 믿으며 갈등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내려가는 건 쉬워도 올라가는 건 어렵다는 걸 안다.
사실 체이스의 모습은 특별한 누군가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상처를 주고 쉽게 잊고 쉽게 오해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 속 모습일 수 있다.

기억을 잃은 체이스를 문제의 근원인 학교에 데려다 주며 엄마는 말한다.
"체이스, 13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아주 길어
등교 첫날 이렇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그걸 다 얘기해 줄 순 없어.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학교에 가면 알게 될 거야. 조금 놀라기도 하겠지만, 덤덤히 받아들여.
알갰지?"
체이스는 주변인들로부터 자신의 과거 행적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가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동안 어떠했길래. 자신의 모습이. 이 상황이 낯설고 끔찍할뿐이지만......어쨌든 체이스가 집중적으로 괴롭혔던 동급생 조엘은 아예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로 전학을 가버렸을 정도다. 체이스가 왜그리도 조엘을 집중적으로 괴롭혔는가에 대한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그냥이다. 이 일로 체이스와 그의 떨거지 둘은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활동 명령을 받고 근처 요양원에 시간을 채우러 다니지만 의미없었다. 과거에는......체이스가 기억을 잃은 현재는, 정말 성실하게 봉사를 한다.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며 자신이 무엇을 알아야하고 무엇을 간과했는지 깨달아간다. 주변의 친구들도 체이스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체이스의 기억상실증은 모두에게 변곡점이다.
"너에게 일어난 일이 정말 끔찍하긴 하지만 네겐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해.
넌 처음부터 다시 자기 인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완전히 새로운 출발인 거지.
이 기회를 낭비하지 말거라!
물론 넌 이걸 행운이라 생각하지 않겠지만,
너 같은 상황이 되기 위해 뭐든 할 사람들이 세상엔 수도 없이 많단다.
완벽한 백지 상태 말이야."
체이스의 일탈과 방황이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고
어떤 치유를 받아야하는가는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조금 아쉽다.
결손 가정에서 자랐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부분적으로 있긴 하지만 체이스만의 아픔을 알 수 있는 실체가 가리워져 있다.
체이스가 조엘에게 행한 지난 날의 폭력이 기억에서 사라진 지금 그로 인해 자신을 향한 혐오스런 시선만 있고 이유는 빠진 이 상황.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체이스의 마음은 무겁다. 왜냐하면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죄책감을 느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으므로.
"우리가 받은 벌에 비하면 학교를 폭파한 일쯤은 장난이 돼버린다.
어떤 말이 진실일까?
아빠가 말했던 것처럼 엄마가 나를 약골로 만들려고 괜한 말로 겁을 주는 건 아닐까?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나는 13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잃어버린 기억을 채워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엄마, 아빠, 절친, 그리고 학교 친구들, 심지어 아이스크림 테러 소려까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과거를 잃어버린 게 이상했던 것처럼,
기억이 돌아오는 건 더 이상했다.
기억이 돌아올수록 나 자신이 더 낯설어졌다."
서서히 체이스의 두려운 과거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체이스...... 불량소년.
체이스는 날아오를 수 있을까?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서 얽히고 설킨 매듭을 풀어버리고 말이다.
시종일관 체이스의 꿈처럼 현실처럼 기억의 경계를 허물었던 그 소녀의 얼굴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체이스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그 소녀도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소녀가 체이스를 날아오르게 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을 다루며 우리가 관심을 두는 쪽은 당연히 피해학생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으로서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인임을 기억해 두자.
그리고 가해학생들 또한 응당한 댓가를 치루는 일엔 변함없겠지만 그들의 절실함을 외치는 중인 어두운 이면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두자.
사람은 자기가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외면는 법이다. 바라보기 싫은 것들에 자신을 투영해 증오하고 악에 받쳐 불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려면,
그때의 일을 바로잡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 용기가 필요하다.
강하지만 동시에 바보같은 힘.
이런 순간들은 모든 이한테 있다.
중요한 건 잠깐의 나쁜 시기에
나의 인생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이다.

체이스를 통해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그러기 위함은 또 얼마나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한가를 알아간다.
모두가 행복하고 존중받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그 와중에 상처받고 쓰러진 사람들이 있으면 위로해 주고 일으켜 주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내가 곧 피해자고, 가해자일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