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쥐 두마리.
불빛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잔나의 표정에 할말을 잃습니다.
대자연의 노여움 앞에 놓인 남편을 걱정하며 생명부지의 최소만을
간구하는 잔나의 눈빛.

어부의 업을 삼아 바다사람으로 살고 있는 남편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물고기를 잡으러 멀리 더 멀리 나가있나 봅니다.
매서운 칼 바람 소리에 요동치는 폭풍우가 바다를 진노케 하나봅니다.
잔나는 생각에 잠깁니다.

잔나의 뒷모습......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다른 수많은 어부들처럼 잔나의 남편도 바다가 삼켜버린다면 어찌해야 하나......
가난했고,
쉼없이 일했고,
먹을 것이 없고,
여전히 가난했고,
......
잔나의 두렵고 떨리는 고통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잔나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뿐입니다...
간구하고 바라는 마음...
누구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걸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잔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어둠을 헤쳐 나가봅니다.
부서지는 소리들, 어둠은 많은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 이웃

잔나가 어둠이 때리는 이웃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남편을 망망대해에서 잃고 어린 자식들을 홀로 키우는 이웃이 걱정이 되어서요. 이웃을 향한 발길 조차도 호락하게 허락하지 않는 거센 바람의 어둠은 잔나를 삼킬 것처럼 다리를 얽어맵니다.
신이 있다면......
창백한 모습으로 차갑게 식은 이웃은 쥐들만이 알아주었겠지요.
아이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은채 꼼짝없이 굳어있는듯 보여요.
만약, 나였다면......
이 상황을 내가 보고말았다면, 과연 나는 어찌했을까요......
무섭고 공포스러운 이 가난의 두터운 암흑을 고스란히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잔나는 한명씩 한명씩,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바람을 거스르며 운명을 거역하듯이 그렇게 구원의 손길을
아이들을 향해 굳게 뻗습니다.

* 남편
잔나는 데려온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려온 후 남편에 대해 생각의 첫 물고가 트이는 것은
분명 화를 낼거라고 여깁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요.
잔나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남편.
목숨을 걸고 가족을 지키려고 하는 단단한 몸집의 남자.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고 잔나는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사랑하며
함께 해온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잔나의 인간적인 생존에 대한 고민과 갈등, 그리고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얼마나 버거운 긴장의 연속일까요.
'만약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이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하느님,
제발 남편을 지켜주세요."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어요.
끔찍한 밤바다를 헤치고 무탈하게 돌아온 남편.
잠시 정적.
"여보, 이웃집 여자가 죽었어요.
아이들을 두고 먼저 떠나는 마음이 어댔을까요.
아직 많이 어린 아이들인데...... "
한참을 정적. 고민하던 어부.
"아이들을 일단 우리 집에 데려옵시다. 그 다음엔 어떻게든 또 되겠지.
여보, 어서 가서 아이들을 데려옵시다."
"그 아이들, 여기 있어요."

빛이 밝아옵니다.
어둠을 뚫고 희망이 떠오릅니다.
의지가 이겨냅니다.
남편이 말하지요. 일단 우리 집에 데려오자고요. 집입니다.
삶과 죽음이 오롯이 공존하는 존엄한 생명의 움틈.
우리의 집인 것입니다.
마지막 엔딩은,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며,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에 관하여 '그리되길 마땅한' 이라는 괘변적 이유를 달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였네요. 극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인생들이 지구 곳곳에 있을 겁니다.
올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정말 귀하게 철학해 본 그림책이었습니다.
그림책만으로도 이런 깊은 울림을 받고 사유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담푸스 출판사, 그리고 허니에듀 서평 이벤트 너무 감사드려요.